초등학교 시절 학교 복도를 지키던 노란 배지의 주번을 기억하는가. 마치 교통정리를 하듯 `좌측보행'을 외치며 우리를 줄 세우던 그들이 이제 `우측보행'을 외치고 있다. 보행자 통행법이 좌측에서 우측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일제 강점기인 1921년 조선총독부가 좌측보행을 시행한지 88년 만이다. 오랜 시간을 거쳐 하나의 문화로 굳어진 좌측보행의 문제점을 살펴보고, 안전과 편리함을 위해 새롭게 바뀐 우측보행에 대해 알아보자.
 〈편집자 주〉

 

좌측보행 무엇이 문제인가
 지난 10월 1일부터 정부가 88년 묵은 보행자 법을 좌측보행에서 우측보행으로 바꾼다고 발표했다. 여태껏 우리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 온 좌측통행은 일본식 교통정책이 식민통치 기간 동안 한국에 이식된 것이다. 1921년 조선총독부는 사람과 자동차 모두 왼쪽으로 다니도록 법령으로 규정했다.
 광복 후 미국의 교통정책을 가져와 차량은 우측통행으로 바뀌었지만 보행자의 좌측통행은 그대로 남겨두었다. 이처럼 차량과 보행자 간 서로 맞지 않는 교통법으로 그동안 많은 교통사고를 야기시켰다는 점에서 정부는 우측보행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특히 보도와 차도가 구분되지 않은 도로에서는 보행자가 차를 등지고 걷기 때문에 돌발 상황에서의 대처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주장이다.
 또한, 공항 출입국 게이트와 무빙워크, 지하철 개찰구, 회전문 등 각종 시설물들이 대부분 우측보행에 편리하게 설치되어 있고, 박물관이나 미술관 등의 전시시설 보행동선 역시 우측보행이 편리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러한 우측보행 위주의 시설물과 보행동선이 그동안 많은 혼란을 가져다주었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인구의 90%에 육박하는 오른손잡이의 신체적 특성도 반영되었다. 오른손에 짐이나 우산 등을 들고 좌측보행을 하게 되면 서로 충돌할 확률이 상대적으로 높아 우측보행이 더 효율적이라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다.


우측보행 한 달째
 하지만 아무리 교육을 하고 홍보를 한다고 해도 오랜 시간 축적되어 온 인식과 몸에 베인 행동을 바꾸기가 쉽지 않다. 가장 먼저 우측보행이 시작된 지하철은 역 내부 벽면에 우측보행에 대한 설명과 안내서를 부착했고, 바닥에는 우측보행 동선을 그려놓았다. 또 에스컬레이터 방향도 기존과 반대로 바꾸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측보행이 시행되던 첫날, 우측보행을 지키려는 사람들과 습관에 베인 대로 좌측보행을 하는 사람들이 서로 뒤엉키며 혼란을 가져오기도 했다.
 우측보행이 시작된 지 한 달째 접어든 지난 1일 지하철 서면역에서 남상현(좌천동·22) 씨는 "우측보행 캠페인을 시작한 것은 여기저기 붙어 있는 포스터들을 보고 알게 되었는데, 홍보가 부족한 것 같다"며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별 생각 없이 걷다가 바닥에 붙어있는 스티커나 방향이 바뀐 에스컬레이터 앞에서 `아차'하고 급하게 돌아가려다 보니 더 혼잡스럽다"라며 불만을 토로했다.
 또한, 에스컬레이터는 방향이 바뀌어 우측보행 동선을 따르고 있지만 계단을 이용하는 시민들은 여전히 좌측통행을 하고 있어 같은 지하철역 내에서도 상반된 보행동선을 보였다. 여전히 시민들의 혼란은 가라앉지 않은 모습이었다.
 이러한 문제점에 정부는 아직 시범단계이고 예산을 늘려 앞으로 시설물 변화와 새로운 보행법 홍보에 더욱 힘쓰겠다고 밝혔다.
 우측보행에 이와 같은 부정적인 입장이 있는 반면 같은 날 연산동역에서 만난 박지연(주례동·27) 씨는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 하는데 우측보행이 시행되었던 초기에는 어깨도 많이 부딪히고 엄청 복잡했지만 이제는 충돌도 많이 줄었고, 통행이 조금 더 나아진 것 같다"며 우측보행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처럼 우측보행이 시작된 지 한 달째에 접어들었지만 여전히 긍정적 입장과 부정적 입장이 대립하고 있다.


우측보행 문화가 정착되면
 현 시행대로 보행문화가 개선되면 교통사고의 약 20%가 감소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는 연간 약 70명의 사망과 1,700명의 부상을 예방하고, 1,500억 원의 피해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수치이다.
 인체적 측면에서도 눈동자 움직임이나 정신부하, 심장박동수가 좌측보행에 비해 감소되어 심적 안정감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보행 편의적 측면에서는 모의실험 결과 우측보행 시 통행 속도가 1.2배가량 증가하였고 사람들 간 충돌횟수도 24% 감소했다. 통행 시뮬레이션 결과에서도 불규칙적으로 통행했을 때보다 우측으로 통행했을 때 보행밀도가 19% 감소해 더욱 정돈된 모습을 보였다.
 이뿐만 아니라 그동안 해외여행이나 출장 시에 무의식적으로 좌측보행을 한 우리는 `무질서한 한국인'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우측보행은 세계화시대에 글로벌 에티켓과도 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
 그동안 교통법들도 보행자를 위하기보다는 차량을 우선시 하는 경향이 짙었다. 길을 걷다보면 사람이 차를 피해 다녀야 했고, 보행자의 권리란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안전과 편리함, 실용성을 갖춘 우측보행이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우리에게는 안전하고 쾌적하게 걸을 수 있는 보행환경이 필요하다. 앞으로 많은 홍보와 시설물 개선으로 보다 편리하고 안전한 보행문화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우측보행이 안전한 보행문화를 위한 첫걸음이길 바란다.
 우측보행 시행초기인 지금 사회적인 혼란과 국민들의 인식을 바꾸는 것이 당면과제로 남아있다. 무엇이든 새롭게 바뀌는 것이 정착되려면 시간이 걸린다. 정부적 차원과 더불어 국민들도 이에 동참하는 모습을 보여야할 것이다. 현재로서 조금 불편함이 있더라도 더 나은 보행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새로운 통행법을 받아들이고 실천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새롭게 바뀐 보행문화를 지켜 전 세계 보행자 교통사고 1위 국가라는 오명을 벗고, 안전수준과 삶의 질을 높여 대한민국의 경쟁력이 높아지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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