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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특집] 역사의 기록과 시대의 증언으로 40년
활자의 행간에 배인 기자들의 열정들
2018년 04월 11일 (수) 14:32:48 동의언론사 deupress@deu.ac.kr
   

동의대학보가 창간 40주년을 맞았다. 우리 대학의 전신인 경동공업전문학교가 개교한 이듬해인 1978년 4월 10일 경동학보로 창간되어 우리 대학과 불혹의 세월을 함께 했다. 40년의 세월동안 시대의 흐름에 따라 흥망성쇠를 누리며 그 어떤 매체보다 사랑을 받았던 시절도 있었고, 학교의 아픔을 함께하는 휴간의 기간도 가졌다. 2000년대 들어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인해 학보의 인기가 떨어지고 역할이 축소되었지만 여전히 동의대의 여론 창구로서의 역할과 역사의 기록이라는 명분으로 오늘도 학보는 발행되고 있다.

# 여섯번의 이사 후 장착

 현재 동의대신문은 상영관 2층에 자리하고 있는 동의언론사 신문출판국에서 발행하고 있다. 신문출판국의 출발은 경동공전학보사였다. 이후 우리 대학이 1979년 경동공업전문학교를 동의대학으로 개편하면서 1979년 3월 1일 중앙도서관과 함께 부속기관으로 설치되었다. 26년간 유지되던 동의대학보사의 명칭은 2005년 동의대신문사로 변경된 후 2011년 교육방송국과 통합되면서 동의언론사로 변경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편집국의 위치와 규모도 대학의 발전과 함께였다. 동의대신문사는 대학의 역사와 함께 여섯 번 이사를 했다. 창간 이후 초창기에는 일 년에 한 번 씩 이사를 하는 등 40년 동안 대학의 발전 궤적을 밟아 이사 과정을 거쳐 현재 상영관에 안착하였다.
 1978년 창간 당시에는 현재 생활과학관 건물 1층 초대 주간 김재환 교수의 연구실이 편집국 사무실 역할을 겸하였다. 이듬해부터 동의대학 승격과 함께 같은 건물 3층에 동의대학보사 간판을 건 8평짜리 사무실을 갖게 되었다. 기자의 인원이 늘어나면서 1980년 2월에 맞은편 20평 규모의 강의실 공간을 배정받아 대학신문 편집국의 틀을 갖추었다. 기자들의 개인 책상, 수습기자용 회의용 탁자, 수동 교환식 전화기, 연통달린 석유난로 등이 갖추어졌다. 2년 후인 1982년도에 지금의 법정대 건물이 완공되고 그 곳으로 이사를 했다. 기자들이 이사를 직접 했다. 집기와 비품을 1층까지 내리고, 리어카를 빌려 지금의 로터리에서 법정대 건물까지 비탈길을 몇 번에 걸쳐 옮겨야 했다. 1년 후인 83년 2월에 다시 인문대 1호관 5층으로 이사를 하고 3년간을 지냈다.
 1986년 학생회관인 수덕전이 완공되고 학보사 편집국도 제자리를 찾았다. 3층 지금의 총학생회실이 편집국이었고, 그 옆방이 주간 교수실이었다. 공간은 넓어지고 신문서가, 서랍장, 케비넷 등 살림도 늘고 편집국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한 해 뒤 1987년에 학생회관에 있던 공과대학 실습실 이동에 따른 공간 재배치에 의해 4층 남측으로 다시 옮겨 9년 동안 대학언론의 산실 역할을 담당했다. 사무실 구석자리에 흑백사진 현상과 인화를 할 수 있는 작은 암실을 갖추는 등 제대로 된 편집국의 모습을 갖추었다.
 2005년 제2학생회관인 상영관이 완공되어 3층에 동의대신문사와 교육방송국이 복도를 마주하고 입주하여 일명 `동의프레스센터'가 구축됐다. 대학신문사의 기능과 역할 수행에 부족함 없는 공간을 가지게 되었다. 주간실, 편집국, 회의실, 암실 등 기능에 따른 사무실 구조를 갖추고 오늘에 이르고 있다.

# 1980년 첫 번째 휴교령과 휴간

 동의대신문은 시대의 변혁기와 함께 두 번에 걸친 휴간의 아픔을 겪었다.
 첫 번째 휴간은 1980년 민주화의 기대를 모았던 `서울의 봄' 직후 5월 17일 계엄령 전국 확대와 함께 전국 대학 휴교령이 내려지면서 겪었다. 경동학보로 창간 이후 5호부터 `동의대학보'로 제호를 바꾸어 발간해 오던 중 1980년 4월 23일자 제8호를 발간하고 휴교령과 함께 휴간에 들어갔다.
 당시 시대 상황은 1979년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 이후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를 내세운 군부에 의해 정국이 장악된 상황이 이어지고 있었다. 서울의 봄은 5월 17일 계엄령 전국 확대 조치로 끝나고 이후 광주민주화운동, 제5공화국 등으로 이어졌다. 계엄사는 8월 28일자 포고령 제14호에 전국 대학 휴교령 해제를 발표한다. 우리 대학은 9월 3일자로 109일 만에 개강을 하고, 학보도 9월 22일자 제9호를 발간하게 된다.
 당시 계엄령 하에서 발간된 학보의 기사도 일간지와 마찬가지로 계엄사령부의 검열을 받았다. 신문 인쇄를 활판 조판 작업이 끝난 교정용 대장지를 들고 당시 부산시청에 상주하고 있던 현역 군인인 언론검열관의 확인필을 받아야 인쇄를 할 수 있었다. 검열 과정에서 지적된 기사가 있을 경우 그 기사를 다른 기사로 대체하여 재검열을 받아야 하는 시대의 아픔을 겪어야 했다.
 그 해 4월에 발간된 제8호와 9월에 속간된 제9호의 학보 기사에서 대학에 미친 시대상을 읽을 수 있다. 4월 23일자 학보 1면 톱기사는 총학생회장 선거 기사였다. 전달 3월 25일에 학과 대표로 구성된 선거인단 선거에서 경영학과 김병주 씨를 뽑았다는 기사와 함께 4면 광고란에 임원명단이 실려 있다.
 휴교령이 끝나고 9월 22일자로 발간된 제9호 1면 톱 `109일 만에 개강' 기사와 함께 `호국단 간부임명식 총학생회장에 강정희 군' 기사가 눈에 띤다. 휴교령 전에 치러진 총학생회장 선거는 무효화 시킨 것이었다. 제5공화국 군사정권이 학도호국단 총학생회장을 임명제로 퇴보시킨 것이었다. 그밖에도 교수와 학생 대표의 정화결의대회, 정신교육 강화 교수세미나, 학도호국단 간부 전방부대 시찰 등의 기사들이 그 당시의 시대상을 기록하고 있다.

# 5.3 동의대 사건 기록과 휴교령

 두 번째 휴간은 1989년 5월 3일자 휴교령과 함께 이어졌다. 89일간의 휴교령 이후 8월 10일자 제117호로 속간했다. 휴교령의 배경은 우리 대학 역사에서 가장 큰 위기였던 `5.3 동의대사건'이었다. 동의대학보는 5월 1일자로 제116호를 발간했다. 1면 톱기사는 `총학생회 선거전 돌입, 투표는 5월 3일, 7개월 임기 과도기 집행부 체제'의 내용이었다. 그 당시 선거가 사건의 원인 요소 중에 하나다.
 그 당시 학생회장 임기가 1980년도 휴교령 이후 2학기 9월부터 시작되어 다음해 8월까지였다. 비정상적인 임기를 바로 잡기 위해 총학생회장이 8월까지의 임기를 양보하고 선거를 치루기로 한 것이다. 5월 3일에 선출된 회장은 2학기 말까지를 임기로 하여 다음 임기부터 1학기에 시작하여 2학기에 마치는 임기제로 바로 잡는 결정이었다.
 선거전은 4월 20일 1차 유세전을 시작으로 5월 2일 4차 유세전까지의 계획으로 선거운동이 치열하게 진행되었다. 선거전의 열기와 함께 5월 1일 노동절 시위 역시 교외까지 진출하는 등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그 시위 중에 경찰은 자위권 발동 명분으로 시위대를 향해 총기를 난사했고, 항의 시위 중 학생이 체포되고, 5월 2일에도 항의 시위는 계속되었다. 시위 학생들 중에 잠입해 정보 수집 중이던 사복 전경을 학생들이 붙들게 되었다. 학생 대표들은 붙잡은 전경과 구속학생의 교환을 요구했다. 경찰 측은 구속된 학생의 교환 석방을 거부한 채 5월 3일 새벽에 경찰 구출을 명분으로 학생들이 대치하고 하고 있던 도서관 건물 진압 작전을 편다. 칠흑의 새벽에 고층건물인 중앙도서관을 최류탄을 쏘며 진입했으며, 학생들은 저지하다 옥상으로 대피했다. 새벽 시간대 시야가 확보되지 않은 상태의 진압 작전 과정에서 화염병 상자를 쌓아두었던 7층에서 화재가 발생하여 진압 경찰관 7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난 것이다.
 5월 3일자로 문교부의 휴교령 조치가 내려지고 7월 29일 해제될 때까지 89일간 휴교하였다. 재학생들은 갑작스런 휴교에 갈 곳이 없어 공공 도서관 등을 전전긍긍해야 했고, 사태 추이를 지켜보며 불안한 하루하루를 보내야했다. 89일간의 휴교가 끝나고 그해 남은 시간에 1학기와 2학기를 마무리해야 하는 비상 학사일정으로 대학은 급박하게 돌아가야 했다.
 동의대학보는 8월 10일자 제117호 속간되었다. 제117호 학보는 1면부터 8면까지 5.3 사건 관련 기사로 채워졌다. 1면 톱기사 `89일만의 휴교령 해제'부터 사건 진상 심층보도, 원인 규명, 구속 학생, 징계 등 전면에 걸쳐 관련 내용을 싣고 있다. 5.3사건은 대학의 휴교령과 학보의 휴간을 넘어 충격이었고 시련이었다.

# 동의대문학상과 초청강연회 

 동의대신문사는 신문 제작 이외에도 다양한 부대행사를 개최하여 재학생들의 대학문화 창달과 우리 대학 홍보에도 힘썼다.
 1983년 창간 5주년을 맞아 동의대문학상을 제정하여 그해 10월 22일 개교기념일에 제1회 동의대 문학상 시상식 및 문인 초청강연회를 열었다. 신춘문예 말고는 이렇다 할 작가의 등용문이 없던 시절이라 각 대학교의 문학상이 창작의 욕구를 가진 학생들에게 보물같은 창구였다. 원고지에 눌러쓴 단편소설과 시는 학과와 전공을 막론하고 응모하여 자신의 작품을 평가받았다.
 동의대 문학상 수상자들 가운데 작가로 활동하는 자랑스러운 이들도 있다. 드라마 〈펀지〉, 〈추적자〉, 〈황금의 제국〉, 〈태왕사신기〉 등으로 유명한 박경수(국어국문 졸·89학번) 씨가 그 대표적인 예다.
 문학상의 시상식에 열린 문인초청 강연회는 수상과 상관없이 책을 좋아하는 학생들에게 항상 인기를 끌었다. 그동안 동의대문학상의 연사로 초청된 문인은 이어령, 김영하, 김훈, 성석제, 구효서, 박민규 등 당대를 대표하는 저명한 문인들로 지방에서는 직접 만나기 힘든 연사들이라 더욱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디지털 시대에 접어들면서 활자의 인기가 시들해지면서 문학상은 2008년 제26회를 끝으로 막을 내렸고, 문인초청강연회도 2010년을 마지막으로 종료됐다.

# 고교생을 위한 부대행사

 동의대신문사는 재학생뿐만 아니라 고교생들이 대학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부대행사도 기획하여 우리 대학의 홍보에도 앞장섰다.
 1988년 4월 10일 창간 10주년 및 제100호 발간을 기념하여 부산경남 고교 교지 콘테스트를 개최했다. 고등학교에서도 문예반 활동을 활발하게 하던 시기라 부산지역 대부분의 고교에서 참여했다. 시상식에는 수상한 고교의 교사와 문예반 학생들이 직접 우리 대학을 방문하는 등 지역에 우리 대학을 직접 소개하며 홍보하는 역할도 톡톡히 했다. 동의대학보사와 학보도 자연스럽게 고등학교에 알려지면서 지역의 고등학교에 우리 대학의 소식을 전하는 매개체 역할도 되었다.
 고교생들에게 직접적인 홍보를 한 부대행사는 2016년 제32회를 끝으로 역사속으로 사라진 전국 고교생 백일장 행사다. 1985년 제1회를 시작한 백일장 행사는 당일 시제 발표와 심사가 원칙으로 진행되면서 부산과 경남 지역 고교생을 대상으로 한 `제1회 부산·경남 고교생 백일장'으로 출발하였다. 하지만 전국이 1일 생활권으로 편리해지면서 1998년 대회부터는 전국으로 규모를 확대하여 시행했다. 특히 전국의 대학에서 문학분야 특기생을 선발하는 입시제도를 운영하면서 한때는 서울, 경기도를 포함 참여자가 700여명이 넘을 정도로 성황을 이뤘다.

# 인터넷, 모바일 새로운 시도

 종이 신문에 대한 관심이 멀어지면서 동의대신문사에서는 새로운 시도를 계속한다.
 1997년 3월 첫 인터넷 전자신문을 개설한데 이어 2001년 전국 대학 신문 최초의 독자 도메인(http://www.deupress.org)을 만들었다. 그 후 2002년에 새로운 디자인의 인터넷 신문(http://www.deupress
.or.kr)을 마련해 지금까지 이용 중이다.
 PC뿐만 아니라 스마트폰 시대를 맞아 모바일 홈페이지도 마련했다. QR코드 또는 모바일 홈페이지 주소 http://m.deupress.
or.kr를 직접 입력하거나 우리 대학 모바일 홈페이지에서 바로 연결도 가능하다. 또한 독자들과의 소통의 공간을 마련하기 위한 페이스북 페이지를 2014년부터 개설해 운영중이다.
 최근 들어서도 학보는 위기를 맞고 있다. 디지털 시대를 맞아 활자매체에 대한 인기 하락과 속보성 결여로 인한 관심 부족이 이어지고 있다.
 시대의 변화와 함께 다양한 방법을 통해 동의대신문의 글을 알리고 학우들의 목소리를 담고자하는 노력은 계속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보는 우리 대학의 흥망성쇠를 함께하며 우리와 우리 대학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좋은 모습도 나쁜 모습도 있는 그대로의 우리 대학의 어제와 오늘을 담아 내일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당장은 불필요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되돌아볼 우리의 발걸음과 소중한 추억이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항상 가까이에 소리소문없이 발행되고 있었기에 무뎌졌지만 학보에 대한 관심이 절실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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