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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 남은 일제 잔재 알아가기, 두 번째
경제 논리 앞에 사라져가는 일제 강점기 문물
2019년 11월 20일 (수) 11:25:30 기획부 deupress@deu.ac.kr

부산 국제 물류 교역의 도시였던 증거, 초량왜관 마저 위기

부산은 지리적으로 일제 강점기 수탈의 최전선이었다. 이 때문에 지금까지 식민지 잔재가 가장 많이 남아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최근 역사 왜곡, 경제 보복과 관련해 반일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아는 만큼 이긴다'는 말처럼 올바른 역사관을 가지기 위해 일본 침략에 관해 알 수 있는 장소들을 방문해 2회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 주〉

 일본식 주택 `정란각' 문화재적 가치 인정

`수정'으로 명칭 바꾸고, 문화 공간으로 변신

왜관은 조선 시대 일본인들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교역하기 위해 설치했던 장소를 지칭한다. 현재 가장 잘 알려진 초량왜관의 경우 1678년 설치되어 일본 사절과 관리, 상인 등이 거주하면서 외교와 경제 중심지 역할을 했다. 강화도조약을 맺은 1876년부터 일본이 노골적으로 식민지화에 나서면서 이곳에 일본공사관을 설치했

다. 그리고 부산항을 중심으로 한반도 수탈기지와 대륙 침략의 전초기지

로 사용했다. 거주하는 일본인의 수가 늘어나면서 일본식 가옥, 근대 문물들도 늘어났다.
현재들어 마치 초량왜관이 일제의 대륙 침략 교두보 역할을 이었던 것처럼 오해 받기도 한다. 그러나 오래된 역사 속에 부산이 일찍부터 국제 물류 교역의 도시였음을 증명하는 귀중한 장소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지난달 이곳 초량왜관을 찾았다. 마을 곳곳에 일본식 가옥을 비롯한 그 시절 유치원 등 잔재도 많이 남아있었다. 가장 먼저 최초의 물류 창고인 남선창고터를 찾았다. 원래는 명칭은 북선창고였으며 명태를 많이 보관한다고 명태고방이라고도 불렸으나, 1914년 철도의 개통으로 윗지방에 북선창고가 생기면서 남선창고로 명칭을 바꾸었다. 현재는 그 자리에 대형마트가 들어섰다. 주차장 벽면의 빨간 벽돌과 그 앞에 설치된 안내판만이 이곳이 남선창고였음을 알려주었다.
몇 발짝 떨어지지 않은 곳에 엔틱한 느낌의 카페가 있다. 이곳은 원래 1922년에 세워진 한국 최초 근대식 병원인 옛 백제병원이었다. 개인이 운영하다 경영난으로 중국인에게 권리가 넘어갔다가 이후 일본 장교 숙소, 예식장 등 여러 공간으로 변모했다. 1972년 화재로 5층과 4층 절반이 없어지자 일부를 철거했다. 지금은 1층 브라운핸즈 부산점 카페로 2층 갤러리로 이용되고 있다. 카페 내부에는 옛날 문틀과 지하실 등 옛 흔적이 많이 남아있었다. 낡은 목조 계단을 밟고 갤러리로 올라가니 입구에 백제병원의 사진이 전시되어 있었다. 갤러리 옆으로는 201호과 202호 팻말과 함께 병실도 그대로였고 문구멍 사이로 내부도 엿볼 수 있었다. 옛 모습과 현재의 모습이 공존하는 것이 묘하게 어울리는 곳이다.
마지막으로 1943년 부산에 거주하던 일본인이 지은 일본식 2층 목조 주택 (구)정란각을 찾았다. 고급 음식점으로 이용되었다가 침략 당시 지배층이었던 일본인들의 주거형태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가치를 인정받았다. 2007년 등록문화재 330호로 지정되면서 2011년 문화재청이 매입했다. 이후 복구 과정을 거쳐 2016년 6월에 지역명인 수정동에서 따온 이름 `수정'으로 명칭을 바꿔 일반인에게 개방되었다. 대관과 전시 등 문화 사업과 노인 일자리 사업의 일환으로 차와 문화상품을 판매하는 등 수익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고즈넉한 모습과 근대화 시절의 분위기가 물씬 느껴져 다양한 촬영지로 사용되기도 한다. 최근 영화와 유명 가수의 뮤직비디오에도 실려 더욱 인기를 모으고 있다.
1층에서 만난 방문객 윤수빈(해운대구·56) 씨는 "카페 같은 분위기에 잘 모를 수도 있지만 이곳은 일본이 우리나라를 식민지로 지배했던 것을 잘 보여주는 건물로 의미가 깊다"며 "후세에도 잘 보존이 되어 아픈 역사를 기억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이곳 초량왜관 역사적으로 의미 깊은 장소임에도 불구하고 최근 재개발의 바람에 휩쓸려 무차별적 철거 위기에 놓여있다. 주변 낡은 건물들을 부수고 지역 성장을 이유로 아파트와 상가 등이 들어서고 있다.
서울 서대문 형무소의 경우 일본의 잔인한 행적을 잘 보여주는 공간이다. 애국지사들의 고문과 사형이 집행된 곳을 사실적으로 보여줌으로써 교육과 역사의 매개체로 사용되고 있다. 부산의 경우 앞서 말했듯이 일제강점기 시대 지배의 지역적 역할이 특별했던 곳이다. 특히 초량왜관의 경우 가장 그 특색이 강했다. 이 잔재들을 무차별적으로 없애기 전에 우리의 아픈 역사를 되돌아볼 수 있으며 경각심을 줄 수 있는 역사의 증거물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리고 보존에 동참하는 자세 역시 중요하다는 것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서 미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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