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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 이주의 아픔을 딛고 고향으로 돌아온 고려인
거주를 위한 가장 기본적인 비자 문제마저 해결되지 않아
2019년 03월 04일 (월) 14:28:28 김라현 편집국장 sbdfng@naver.com

우리의 역사 속에서 잊혀졌지만 자신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연해주에서 살았던 사람들이 있다. 러시아에서는 `까레이스키'라고 불리는 이들은 고려인이다. 낮선 땅에서 몇 십 년을 유랑해온 그들은 고향인 한국으로 돌아오려고 하고 있다. 본지 기자들은 고려인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광주시 월곡동에 있는 `고려인마을'을 방문했다. 〈편집자 주〉

고려인은 일제강점기 때 연해주에서 한인촌을 형성해 살았던 조선인들이다. 이들은 생김새가 일본인과 비슷하여 간첩활동을 해도 구분 할 수 없다는 이유로 구소련 곳곳으로 강제 이주되었다.
구소련이 해체된 이후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고려인조차 얼굴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박해와 차별을 받았고 척박한 땅에서 생계를 꾸렸던 이들은 또다시 유랑 생활을 했다. 떠돌이 생활 끝에 자신들의 고향으로 돌아오려는 고려인들이 늘어나면서 국내에는 몇 개의 고려인마을이 형성되었다.
현재 우주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등 7개국에 살고 있는 고려인은 약 60만 명으로 추정되고 국내에는 약 8만 명이 거주하고 있다. 이중 일부는 광주 월곡동에 정착해 살고 있다. 광주 월곡동의 고려인마을은 생계의 목적으로 형성되다보니 일반적인 주택가와 크게 다를 바 없었다. 마을 곳곳의 간판에는 러시아어와 한글이 같이 쓰여 있었다.
월곡동에 고려인마을이 형성된 것은 집값이 싸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못한 고려인이 쉽게 집을 구할 수 있고 공단 근처에 외국인 노동자를 위한 일자리가 있어 취직이 쉬워서였다. 2012년에 네 가정으로 시작된 고려인마을은 현재 약 4천여 명이 살고 있으며 매달 평균 60여 명씩 증가하고 있다.
고려인 특화 마을이 조성되고 집중적으로 고려인이 늘어난 것은 `고려인마을 협동조합'의 활동 덕분이다. 이 조합은 고려인들이 한국에 자리 잡는 것을 도와주기 위해 만든 자치기구이다. 의료보험이 없어 병원에 가기 힘든 고려인을 위한 진료소를 무료로 운영하고 있으며 임금과 비자문제를 해결해야 할 때 법률 서비스가 있어 도움 받을 수 있다.
이중에서도 가장 큰 변화는 아이들을 위한 시설이 생긴 것이다. 지원센터 중 가장 먼저 개설됐다는 `고려인 청소년 지원센터'를 찾으니 아이들이 머리를 맞대고 숙제를 하거나 게임을 하고 있었다. 관계자 이믿음(광주 월곡동) 씨는 "학교를 마친 아이들은 이곳에서 친구들과 놀기도 하고 공부도 한다"며 센터에 대해 설명해줬다.
안쪽에 마련된 작은 방에는 고려인 청취자를 대상으로 운영되는 고려 FM라디오 녹음실이 있었다. 이 라디오를 통해 국내와 국외의 고려인들이 서로의 소식을 주고받고 한국생활에 대한 정보를 나눈다. 국내에서 고려인들이 라디오 방송국을 개설한 것은 처음이라 작은 라디오 녹음실이 가지는 의미는 매우 크다.

초기에는 고려인에 대해 잘 알려지지 않았고 자체 예산도 부족해 센터 운영이 어려웠다고 한다. 하지만 점차 고려인이 국내에 알려지게 되면서 소소한 후원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정부의 지원도 받게 됐다.

정부의 지원을 받아 운영되고 있는 `바람개비 꿈터'는 연령대가 조금 더 낮은 아이들을 돌보는 센터다. 아이들이 놀 수 있게 마련된 공간에서 김니카(광주 월곡동·8) 양은 한국말로 "러시아 춤을 추는 걸 좋아한다"고 말하며 춤추는 모습을 보여줬다. 센터의 아이들 중 몇몇은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이믿음 씨는 "바람개비 꿈터와 고려인 청소년 지원센터에는 선착순으로 등록된다"며 많은 사람을 수용하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두 센터는 기본적으로 아이들의 교육과 돌봄을 맡고 있다. 고려인 가정 대부분이 맞벌이를 하기에 아이들은 학교를 마치고 이곳에서 친구들과 공부도 하고 저녁도 같이 먹는다.
센터 외에도 마을 생활에 적응하는 것을 도와주는 여러 행사들이 개최된다. 매해 10월 21일을 고려인 날로 지정하여 고려인으로 이루어진 합창단과 오케스트라 `아리랑' 등의 단체들이 다양한 공연을 선보이며 고려인을 알린다.
고려인들에 대한 지원은 아직 부족하며 집값 상승 등의 문제점이 생기고 있다. 대표적인 문제점인 집값 상승으로 인해 고려인들이 정착했던 지역에서 또다시 다른 곳으로 이주해야 할지도 모른다. 이런 고려인에 대한 지원이 더 늘어나야 하지 않을까.
안정적인 체류가 힘든 이유
같은 동포이지만 고려인이 우리나라에서 한국인으로 산다는 것은 불가능 하다. 고려인들이 한국에 들어오기 위해 꼭 받아야 하는 비자는 체류기간이 짧아 가정이 해체되는 경우가 흔하기 때문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고려인들은 계속해서 정부에 청원을 넣고 있다.
현 정부 이전에는 동포취업방문비자인 H2 비자를 받아 우리나라에 머물러야 했다. 이 비자는 만료가 되면 자신이 왔던 국가로 가서 다시 비자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지속적인 경비 지출과 이산가족이 많았다.
현재 비자 정책이 개편되어 고려인은 가족 동반비자로 분류되는 F1 비자를 받아 국내로 들어올 수 있다. 그러나 이 비자의 경우 취업을 하지 못해 돈을 벌지 못하며 사회통합 프로그램을 필수로 이수해야 한다. 이를 어길 시에는 150만 원의 벌금을 내고 추방을 당하기에 고려인들의 고충이 크다. 우리나라에서 살기 위해 온 그들은 취업이 불가능한 비자를 받으면 경제적인 문제가 생겨 생계를 꾸려가지 못한다. 심지어 고려인 자녀의 경우 만19세가 되면 부모가 살았던 나라로 강제 추방되는 어려움이 있다.
고려인 자녀들이 추방을 당하지 않으려면 몇 가지 조건 중 하나를 충족해야 한다. 우리나라 돈으로 5억 원 상당의 재산을 소유하거나 대학진학 또는 한국인과 결혼을 해서 새로운 체류 자격을 취득 해야만 추방당하지 않는다. 이 조건들은 고려인이 아니라도 충족하기 어려우며 조건을 충족해도 한국인이 아닌 외국인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다문화 가정으로 받아들여진다.
법무부는 한국인과 외국인 근로자의 취업 시장이 흔들린다는 이유로 고려인들의 국적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현재까지도 고려인의 여권에는 무연고 한국인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국가에서는 고려인을 한국인으로 인식하고 있지 않지만 고려인들은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연해주에서 강제 이주를 당해 러시아 여기저기를 유랑했던 고려인들은 자신의 의지가 아니었음에도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우리의 역사에서 잊힌 그들을 정부는 한국인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몇 십 년을 아는 이 하나 없는 척박한 땅에서 유랑 생활을 해야 했던 그들이 우리와 같은 역사를 가진 한국인임을 상기해야 하지 않을까. 고려인들의 소원은 한국인으로 인정받는 것이며 국가가 인정해 줄 그날을 기다리고 있다.
 김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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