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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주최의 역사 탐방을 다녀와
일본 사가현 역사 현장을 가다
2018년 09월 03일 (월) 11:27:46 문화부 deupress@deu.ac.kr

우리 대학 박물관에서 주최하고 있는 역사탐방이 올해는 18번째를 맞아 일본 사가현의 한일 역사교류 현장을 탐방했다. 일본 사가현(佐賀縣)은 고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와 역사적인 교류 흔적이 많이 남아있는 지역이다.
고대 쌀농사 문화의 전래, 왕인박사에 의한 한자 전래, 임진왜란의 전진기지 역할을 한 히젠 나고야성,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 도공들이 이룬 이마리와 아리타 도자기문화의 현장을 답사했다. 지난 6월 29일부터 7월 1일까지 3박4일 일정으로 사가현의 역사교류 현장을 탐방했다.


고대 쌀농사 전파 유적 마츠로칸
역사탐방단 일행들은 역사공부의 보람과 여행의 설레임을 안고 쾌속선을 타고 일본 후쿠오카 하카다항(博多港)에 도착했다. 첫 번째로 사가현 가라쓰시에 위치한 마츠로칸(末盧館)을 방문하였다. 마츠로칸은 일본의 쌀농사 발상지 역사를 전시하고 있는 작은 박물관이다. 마츠로칸은 중국의 삼국지 위지동이전에 기록된 일본 고대국가 말로국(末盧國)에서 따왔다.
이 박물관은 1979년에 도시계획사업 조사과정에서 발견된 논농사를 지었던 나바타게(菜畑) 유적을 발굴하고 그 역사를 기록과 전시하고 있다.
전시관에는 7개의 주제별로 구성되어있다. 나바타게 유적의 발견 과정을 발굴조사 계기·조사·정비 등의 과정을 전시하고 있다. 세계의 쌀농사의 전파 경로 안내, 일본 최고의 도작 유적인 나바타게의 역사적 의의와 당시의 생활상 재현, 제사와 주거 상황 소개, 돌도끼, 손도끼, 끌 등의 목공 기술 재현, 유적 출토품인 청동기류를 전시하고 있다. 특히 발굴을 통해 전시하고 있는 탄화미 250알 중 100알 이상이 자포니카 종으로 현재 한국과 일본에서 생산이 이어지는 동아시아의 쌀농사 역사를 알 수 있다.
야외에는 발굴 기록을 근거로 고대의 논을 재현했고, 주거 공간인 수혈식 주거지도 재현하여 당시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도록 꾸며져 있다.


임진왜란 출병 기지 히젠 나고야성
역사탐방단 일행은 이번 여정 중 가장 우리 역사와 관계가 깊은 가라쓰시의 나고야 성터를 찾았다. 가라쓰(唐津)는 고대부터 일본에서 중국에 파견한 견당사(遣唐使)의 발착항으로 중국과 한국 등 대륙 교역 관문 역할을 해온 항이다. 특히 부산과 직선 거리가 가장 짧은 지리적 조건을 갖춘 지역이다.
나고야성(名護屋城) 터를 둘러보기 앞서 나고야성박물관을 먼저 찾았다. 우리 대학 박물관에서 사전에 안내를 부탁하여 마쓰 무라 요스게(松村洋介) 학예사가 일행을 맞아 안내를 해주었다. 마쓰무라 학예사는 부산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학자로 한국말로 친절한 안내와 깊이 있는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나고야성은 일본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 臣秀吉)가 조선과 명나라를 치기 위해 일으킨 임진왜란의 출병 기지로 조성한 성이다. 임진왜란 당시 선봉장이었던 가토기요마사(加藤淸正)과 지역의 다이묘였던 데라자와 히로타(寺澤廣高) 등이 히데요시의 명으로 축성을 담당했다. 전국의 다이묘에서 동원된 막대한 인력과 경비로 8개월만에 완공된 전쟁을 위한 성이었다.
성이 완공되고 1592년 음력 4월 13일 선발대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가 출정하여 부산포를 공격하면서 임진왜란이 시작된다. 이후 정유재란 중 1598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고 7년 전쟁은 끝이 난다.
박물관을 둘러보고 성터의 천수각이 있던 자리에 올라서자 바다와 주위가 한눈에 들어오는 시야가 넓은 입지였다. 당시 조선 침략에 동원된 전 병력이 집결하고 출병했던 역사의 현장을 실감할 수 있었다. 지금은 성터만 남아 옛 역사의 흔적을 읽을 수 있었다. 천수각과 망루가 있던 자리에서 둘러본 주위의 지형과 풍경들은 그 당시의 역사현장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었다. 천수각 한 곁에는 혼마루 건물 터가 남아있다.
시야에 들어오는 주위의 멀리까지 히데요시의 명에 의해 도쿠카와 이에야스, 가토기요마사 등 전국의 130여 다이묘(大名)들이 각각의 거주와 군사를 관리하는 진영을 구축하였고, 그 흔적들이 남아있다.
성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고 정유재란이 끝난 후 전국에서 모였던 다이묘들은 떠나고, 도쿠카와 이에야스(德川家康) 막부에 들어서 해체되었다. 성 전체를 허물기 어려워 축성의 상징인 모서리 거석들만 무너뜨려 놓았으나, 당시의 거대한 규모를 짐작할 수 흔적은 남아있었다. 일부석재는 가라쓰성 축성용으로 활용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나고야성 석재로 세운 가라쓰성
가라쓰성(唐津城)은 가라쓰만을 끼고 있는 마이즈루(舞鶴)공원에 있어 일명 마이즈루성으로도 불린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가신이었던 데라사와 히로타카(寺澤廣高)가 임진왜란 이후 정유재란이 끝난 후에 히젠 나고야성의 자재들을 옮겨와 지었다고 알려져 있다. 성의 양쪽에 펼쳐진 백사장이 학이 날개를 펼친 모양을 하고 있어 무학성(舞鶴城)이라고도 불린다. 1602년부터 7년에 걸쳐 완성된 성은 이후 오쿠보, 마쓰다이라, 오가사와라 등으로 성주가 바뀌면서 19세기까지 이어져 왔다.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 전국의 다이묘가 관리하던 번을 없애고 현재의 행정구역인 현을 설하는 폐번치현(廢蕃置縣) 정책으로 해체되었다가 성의 상징인 천수각(天守閣) 등은 1966년도 재건되었다.
현재 천수각은 5층 건물로 고고학자료, 유물, 가라쓰 도기 등을 전시는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또한 성과 이어진 해안의 소나무 숲은 일본의 3대 마쓰바라(松原)으로 장관을 이루고 있다. 해송 100만 그루로 이루어진 이 숲은 폭 400∼700m에 길이 4㎞로 특별명승으로 지정되어 있다.


조선 도공 이삼평과 아리타 도자기
이튿날은 임진왜란을 가장 잘 말해주고 있는 조선 도공들이 이룬 도자기 유적과 생산 판매의 현장을 둘러봤다. 임진왜란을 `도자기 전쟁'이라 부르는 이유는 그 파급 효과와 영향이 컸다는 말이다. 그 당시 전쟁에 참여한 다이묘들은 조선 도공들을 일본의 각지의 번으로 데려가 도자기 문화를 발달시켰다. 이들 도자기 중 유럽 지역에 가장 많이 수출된 항구가 가라쓰였다.
중국 도자기를 유럽에 수출하던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명나라가 임진왜란의 이후 망하고 새롭게 들어선 청나라에서 도자기 거래를 봉쇄하자 조선 도공들에 의해 생산되든 일본 도자기로 대체하게 되면서 대량생산 등 산업화되었다. 이들 도자기들은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유럽 여러국가의 귀족들에게 사치품으로 거래되었고, 도자기와 함께 포장지등을 통해 일본의 문화가 유럽에 알려지는 계기가 된다.
사가현의 서쪽에 위치한 이마리시의 니베시마요(鍋島窯)와 오카와치야마(大川內山), 아리타(有田) 포세린파크, 이삼평(李參平) 비 등 도자기 유적과 현장을 둘러봤다.
이 지역 도자기산업과 문화는 아리타와 이마리 도자기의 비조(鼻祖)로 불리는 조선도공 이삼평에 의해 비롯되었다. 이삼평은 임진왜란 시 조선도공 납치계획에 의해 나베시마번(鍋島蕃)으로 끌려가 가라쓰 도자기를 만들었다. 그가 아스미산(泉山)에서 도자기의 원재료인 백자광(白磁 )을 발견하고 1605년에 덴구다니요(天狗谷窯)를 만들고 일본자기의 시초가 되었다.
`이마리 도자기'는 이마리항에서 나베시마요와 아리타 등에서 생산된 도자기가 집하되어 수출되면 불린 이름이다.
오카와치야마는 1675년에 아리타 도자기의 높은 품질과 기술의 유출을 막기 위해 천혜의 요새 지형을 갖춘 깊은 계곡으로 옮겨와 현재 30여채 도자기요들이 전통을 이어 성업 중이다.
아리타 포세린파크는 무네마사주조에서 도자기엑스포를 위해 조성하여 현재는 도자기 공방, 체험, 판매, 시음 등 관광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테마공원이다. 도자기를 인연으로 자매결연을 맺고 있는 독일의 츠빙거궁을 재현하여 관광 명소가 되고 있다.


천자문 전한 왕인박사 현창공원
마지막 날 탐방단은 백제 왕인박사가 일본에 한자와 유교문화를 전했다는 기록을 연유로 공적을 기리는 간자키시(神崎市) 간자키쵸에 현창공원을 만들고 있는 현장을 둘러보았다. 일본 고서기와 일본서기에 논어 10권과 천자문 1권을 들고 건너가 황태자에게 학문을 전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탐방단 일행을 일요일임에도 불구하고 사가현 간자키시청 상공관광과 야마다 무네노뿌(山田 宗延) 과장과 시교우 마치코(執行 眞知子) 문화재관광 전문원이 현장에서 자세한 설명과 함께 8월 5일에 개장하는 공원을 사전에 안내 받았다.
공원은 인근에 와니텐만구의 돌사당에 왕인박사를 모시는 작은 비와 입구에 `왕인박사상륙전승비'가 세워져 있다. 당시 백제국 영광에서 사가현에 접한 아리아게해를 통해 이 유적지에 왔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었다. 시에서는 이를 근거로 한국에서 왕인박사의 출생지로 알려진 영광군과 자매결연을 맺고 사업을 추진하였다. 영광군에서 목수, 와공, 석공 등의 인력과 재료를 지원하여 백제문을 세우고, 천자문 테마공원을 조성하고 있었다. 천자문을 아베 일본 수상을 비롯해 일본과 한국 양국의 시민, 학생 등이 한자씩 쓴 한자를 아리타 도자기로 구워 국제교류의 상징성을 담은 기념비를 조성하고 있었다.


원시국가 요시노가리 역사공원
탐방단은 1㎞ 거리에 이웃한 요시노가리(吉野ケ里) 역사공원을 마지막으로 찾았다. 이 공원은 1986년부터 4년 7개월간 발굴 조사 과정에서 기원전 1∼3세기의 일본 야요이시대 최대 규모의 원형해자(圓形垓字) 취락이 발견되어 대대적인 국영공원으로 개발되었다. 전체 약 40만㎡에 걸친 면적으로 발굴 유물 전시장과 당시 주거, 제의 등 생활 공간과 건축물들을 복원하여 테마공원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한국계의 청동기와 무문토기 등이 발굴되어 한국의 세형동검집단의 일본 진출의 연구 자료가 되고 있다.
탐방단은 여름 한낮의 뙤약볕 아래서 공원 전역을 전문 해설사의 안내로 국가 형태를 갖춘 기원전 청동기시대의 생활상을 둘러보고 일정을 마무리했다.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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