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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세평] 동아시아 정세와 역사 교훈
2018년 06월 05일 (화) 16:13:44 김형열 사학과 교수 deupress@deu.ac.kr

중국에 유학하던 때의 일이다. 어학연수 코스의 한 강좌에서 여러 나라에서 온 유학생들과 함께 수업을 듣고 있었다. 그날의 수업 주제는 제2차 세계대전과 관련된 내용이었다. 중국인 선생님이 여러 학생들에게 나치에 의해 자행된 유태인 학살에 대한 의견을 물어보았다. 그러다 한 이스라엘 여학생이 자신의 생각을 말할 차례가 되었다.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염념불망(念念不忘)!" 곱씹고 또 곱씹어 결코 잊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독일인들의 행위를 용서할 수는 있어도 잊지는 않겠다고 말했다. 18년이나 지난 지금도 잊혀 지지 않는 장면이다.
대학에서 강의를 진행하면서 한 번씩 학생들에게 던지는 질문이 있다. "역사는 왜 배워야 하는 걸까요?" 학생들은 제각기 다른 자신의 생각을 제시하지만 그 중에서도 많은 학생들의 대답은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서"라는 의견으로 모아지기 일쑤다. 이른바 `역사 교훈'론이다. 과거의 일을 기억하고 과거의 잘못을 현재에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 역사를 배운다는 것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과연 우리가 과거를 기억한다는 것만으로 번영하고 정의로운 미래를 담보할 수 있는 것일까?
근래에 동아시아의 정세가 실로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사실 한반도를 둘러싸고 주변 강국들이 개입하여 동아시아의 정세가 요동을 치게 된 것은 비단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오늘날의 동아시아 정세와 관련하여 역사 속에서 무엇을 상기해야 할까? 한반도에서 벌어진 전쟁이나 식민지화? 또는 그것을 초래한 대상에 대한 증오? 아니, 그것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그것이 발생하게 된 원인이다. 역사를 배운다는 것은 단순히 과거 사실을 암기하고 기억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다. 과거의 오류와 부정적 사건에 대한 기억은 자칫 맹목적인 증오로 흐를 수 있으며 그 기억을 통해 오히려 똑같은 잘못을 되풀이 하게 될 수도 있다. 우리가 과거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왜 일어났는지를 알기 위해서이다. 과거 사건이 발생한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있다면 그 결과와의 관계를 인과관계로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역사사실의 인과론적 규명에 대한 훈련을 거친다면 오늘날 전개되고 있는 현상을 초래한 원인도 알아 낼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이러한 역사인식 과정이야 말로, 남과 북을 둘러싼 오늘날의 정세를 전쟁을 거친 갈등 관계로서만이 아니라 신냉전 구도의 첨예한 국제적 이익 대립으로 파악하고, 한반도 지역의 주도권 회복이야말로 그동안 되풀이해 온 한반도 전쟁 국면의 종식을 가져올 수 있는 조건임을 깨닫게 해주는 지적 전제일 것이다.
또한 이러한 역사인식 과정을 통해 우리는 오늘의 상황을 파악함과 동시에 우리가 해야 할 일에 대해서도 자각할 수 있다. 인류가 전쟁을 되풀이하고, 소수의 지배자가 권력을 독점하고자 해왔으며 성별·빈부·사회적 지위를 이유로 약자가 차별받아온 것은 우리가 그 사실을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다. 바로 알면서도 실천하고자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6월의 기억 속에서 이제 우리는 내일을 위해 오늘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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