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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쪽빛 바닷길로 이어진 도시의 아름다운 이야기 속 풍경들
2018년 03월 12일 (월) 22:33:19 이은지 기자 dldmswl550@naver.com

쉴 틈 없이 배가 드나들며 정박하고, 어느 골목에 들어서도 바다 향을 맡을 수 있는 `통영'은 단번에도 어촌마을임이 느껴지는 작은 마을이다. 통영은 고성과 같은 행정구역에 속해있었지만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지휘체계를 일원화하기 위하여 `삼도수군통제영'을 설치하였고, 이 삼도수군통제영을 줄여 통영이라고 부르면서 역사를 이어왔다. 통영은 마을의 이름부터 곳곳의 장소에까지 전쟁의 애환이 녹아 있다.
은하수로 병장기를 닦은 세병관
과거의 흔적을 찾아 가장 먼저 방문한 곳은 세병관이다. `은하수를 가져다 피 묻은 무기를 닦아 낸다'라는 뜻을 가진 세병관은 임금의 궐패를 모시고 있어서 매달 두 번 대궐을 향하여 예를 올린다. 세병관에 들어가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문이 있다. 바로, 창을 거두어 싸움을 멈춘다는 뜻을 가진 `지과문'이다. 이 문을 지나자 사방이 벽 체 없이 개방된, 정면 9칸·측면 5칸의 규격을 가진 세병관을 만날 수 있었다. 현존하는 목조건물 중에서 가장 크다고 알려진 만큼 아주 높고 튼튼하게 보였다. 세병관 주위 건물에는 전쟁에 필요한 군사품을 만들던 곳인 `12공방'과 중국사신과 같이 귀한 손님을 맞이할 때 사용하던 `백화당'이 있다.
공방 언덕에서 내려다 본 통영은 아주 평화로웠다. 옛 선조들도 이 고요한 풍경을 바라보면서 전쟁 없는 나라를 소망했을 것을 생각하면, 세병관의 의미는 더욱 뭉클하게 다가온다. 건물의 한켠에서는 세병관을 유네스코 기록유산에 등록하기 위해서 내부를 열심히 복원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건축사적으로 많은 가치가 있는 세병관이 세계적으로도 인정을 받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충무공을 모시는 충렬사
그 다음 방문한 곳은 `충렬사'다. 충렬사는 임진왜란이 끝나고 8년 후, 왕명에 의해 건립된 사당으로 이순신 장군의 신위를 모셔서 춘추제향을 지내던 곳이다.
충렬사에는 `내삼문, 외삼문, 홍살문' 총 삼문이 있었다. 단아하고 정교해 보이는 내삼문은 몸을 낮추라는 의미로 출입문인 양쪽 협문을 낮게 만들어 안쪽에 위치하고, 반대로 외삼문은 문들 중 가장 바깥에 위치하며 문에는 태극문양이 장식되어 있었다. 또, 외삼문은 좌·우에 3개의 비각들이 나란히 줄지어있는데 멀리서보면 아름답게 이루어져 있다.
광복 후에 이 조형미는 우표 도안으로 사용 될 만큼 뛰어났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홍살문은 다른 문들에 비해 경건한 느낌이 들었다. 또 문 뒤엔 제관들이 몸과 마음을 정결히 하고 의복을 갖추어 입는 `동재', 제례에 사용되는 제물을 다루는 과방으로 이용된 `서재', 지방민의 자제를 훈육하기 위해 개설된 서당인 `경충재' 등 문 외에도 여러 가지 건물이 있었다.
충렬사는 소중한 보물도 품고 있다. 충렬사 팔사품을 그린 채색화인 `통영충렬사팔사품병풍', 정조대왕의 하명한 바를 이득제 통제사가 써서 판각해 놓은 `어제기판'이 있다. 동시에 현판, 어제사제문, 충무공전서, 통영각양사례의 전통들이 충렬사를 지키고 있다.
동피랑부터 서피랑마을까지
이순신 장군의 혼이 잠들어 있는 통영에는 예쁜 마을들이 있다. 바로 동피랑 마을과 서피랑 마을이다. 먼저 동피랑 마을은 통영의 대표 어시장인 중앙시장 뒤 쪽 언덕에 있는 마을이다. 이순신 장군이 설치한 통제영의 동포루가 있던 자리인 이 곳은 한 때 낙후된 마을이었다. 통영시는 이 마을을 철거하고 동포루를 복원하여 주변에 공원을 조성하려고 했다. 하지만 주거지를 위협하는 개발이라며 시민단체와 전국의 미술대학 재학생이 마을을 지키기 위해서 벽화를 그렸고, 가구 세 채만 철거하고 나머지는 그대로 보존하며 개발했다. 이 후 예쁜 벽화거리가 조성되어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 될 수 있었다. 동피랑 마을에 도착했을 때, 구불구불한 오르막 골목길이 벅차기도 했지만 올라가면서 보이는 강구항 덕분에 가슴이 트인 느낌을 받았다. 서피랑 마을도 비슷하다. 음악계단과 음악정원을 지나오면 서피랑 99계단이 시작되는데 올라가야하는 길이 버거울 수도 있지만 벽화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며 마음을 달랠 수 있다.
벽화의 알록달록한 색보다 더욱 아름다운 통영은 예술가의 영감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하였다. 통영에서 나고 자란 작가는 유명한 시 `꽃'의 시인 김춘수, 항구의 이야기를 쓴 시인 유치환 등이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저명한 작가는 박경리 일 것이다. 통영에서 나고 자란 작가의 이야기를 박경리기념관에서 만나보았다.
예향 통영의 박경리기념관
소설 `김약국의 딸들'은 통영에서 약국을 운영해온 주인공을 배경으로 이야기를 펼쳐 가는데, 통영사람들에게 익숙한 풍경들이 많아서 마을 주민들이 사랑하는 작품이다. 이 작품을 만든, 한국문학사에 길이 남아있는 박경리 작가를 찾았다. 건축가 유춘수가 설계한 2층 규모의 박경리기념관은 뒤의 산들과 어우러져 한 폭의 자연 같았다. 건물의 1층에는 사무실과 다목적실이 배치되어 있고 2층에는 유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여느 기념관처럼 작가의 약력이나 생전 사용하던 물건들이 잘 정리되어있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바로 친필 원고와 계약서였다. 인쇄되어 나온 책들만을 보다가 작가가 직접 눌러쓴 원고들을 보니 느끼는 바가 달랐다. 작가의 고뇌와 사색들이 더욱 잘 전해져서 문학인의 고통과 고고함이 느껴지는 듯 하였다. 기념관 외부에는 높이가 앉은 키보다 조금 큰 박경리 동상이 있는데 안경을 쓰고 책을 들고 계시는 작가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어디선가 강인함이 느껴졌다.
통영에서 의미있는 일정들을 소화한 다음 날, 고성을 찾았다. 고성은 `무쇠로 만든 단단한 성'에서 붙여진 이름으로 아주 단단한 지반을 가진 지역이다. 한 시에서는 `고을의 성은 새롭게 철문으로 쌓았는데, 누 위에 북소리는 둥둥거리네.'라며 고성을 표현했다. 고성은 산들에 에워싸여 폐쇄성을 가진 지역이기에 마을의 문화가 아주 독특하게 발달되어 있는데, 대표적인 예로 탈이나 공룡 등이 있다.
발자국에서 비롯된 공룡박물관
중생대 백악기 시절, 한반도에도 공룡이 살았다. 고성에는 이를 증명할 수 있는 새발자국, 공룡발자국, 다양한 퇴적구조, 해륙분포 등이 있다. 고성공룡박물관은 국내 최초의 공룡전문박물관으로서 공룡발자국 화석을 눈으로 직접 보고, 입체로 만들어 놓은 공룡모형들을 즐길 수 있다. 총 5개의 전시실에는 각각의 테마가 담겨있는데 가장 인상 깊었던 전시실은 1전시실과 3전시실이었다. 1전시실에는 실제 공룡의 골격을 전시해서 체감으로 느껴지는 크기를 알 수 있었다. 공룡 옆에 서면 매우 작은 우리의 모습을 보며 중생대 시절의 환경을 상상해보았다. 3전시실은 백악기 공룡들의 모습을 움직이는 공룡으로 생동감 있게 재현한 곳으로 파키케팔로사우루스와 트리케라톱스가 전시되어 있다. 버튼을 누르면 공룡의 소리와 함께 제자리에서 발걸음을 움직이는데, 모형인줄 알면서도 한껏 긴장감을 느낄 수 있었다.
박물관을 나오면 편백나무 숲으로 되어있는 산책로가 관광객들을 반겨주었다. 몸을 가볍게 해주는 피톤치드 성분이 많이 함유되어있어 힐링하기에도 좋은 장소이다. 또, 바닥분수 물놀이를 즐길 수 있는 `미로공원'과 20여 점의 공룡조형물과 작은 동물원이 있는 `공룡공원'이 있어 박물관 관람 후 꼭 방문해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사천을 뒤로하고 우리의 여정은 삼천포로 향했다. 삼천포는 사천군과 합쳐져 사천시로 바뀌면서 정식명칭이 사라졌지만 많은 사람들의 뇌리에 존재하며 불려지고 있다. 지난 2013년에 인기리에 종영된 tvN드라마 돻응답하라 1994돽에서 삼천포 출신인 주인공 김성균이 나와 화제가 되었다. 극 중에서 넓은 바다와 항구가 나와 삼천포의 아름다움을 표현했다. 삼천포는 작은 항구도시이지만 해안 경치가 빼어날 뿐만 아니라 먹을거리가 풍부해 그 어느 지역보다 살기 좋은 고장이다.
삼천포 시인 박재삼문학관
박경리문학관에 이어서 사천시에 위치한 `박재삼문학관'을 찾았다. 박재삼은 소박한 생활과 자연에서 소재를 찾아 애련함을 노래한 시인으로서 학창시절 많이 들어봤던 시인일 것이다. 교과서에서 접했던 `추억에서', 대표 작품으로 꼽히는 `울음이 타는 가을강'을 읽다보면 시인 특유의 섬세함을 느낄 수 있어서 시인을 꿈꾸는 많은 사람들의 스승으로 여전히 남아있다. 문학관은 총 3층으로 이루어져있는데, 1층에는 시 낭송할 수 있는 부스와 시어를 이어 맞추는 놀이를 할 수 있는 체험공간들이 있다. 마이크에 울리는 목소리와 영상사진은 낭송을 더 구슬프게 만들어 주었다.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가보면 시인의 일대기를 영상으로 볼 수 있는 장소가 있다. 의자에 앉아서 영상을 보면 시인이 바로 앞에 있는 듯 생생하게 느껴졌다. 마지막인 3층에는 어린이를 위해서 읽을 책을 구비해두어서 문학관 측의 배려를 느낄 수 있었다. 문학관 바로 앞에는 큰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시인이 찾아오면, 어릴 적 느꼈던 향수를 기억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문학관을 나왔다.
둑을 쌓아 만든 대방진 굴항
나라를 지키고자 한 애국심은 사천시에도 번져있었다. `사천해전'에서 거북선을 처음 활용하였던 이순신 장군은 일반 배보다 큰 거북선을 굴항에다가 숨겼다. 굴항은 거북선을 숨기고, 군사 작전을 수행하기위해 사용되던 곳이다. 굴항의 역사는 고려로 거슬러 간다. 고려 말 왜구들의 침입이 빈번해지자 이를 막기 위해서 구라량영을 설치하였지만 폐영 되어 소규모의 선진으로 남았다. 이후에 조선시대 말에 남해 창선도의 군사연락과 왜구 방비를 위해 대방선진을 설치하였다. 선진에는 병선의 정박지로 사용하기 위하여 둑을 쌓아 활처럼 굽은 만을 만들고 굴항을 설치하였다. 지금은 예전과 달리 새로이 복원된 모습이고 주민들이 선착장으로 이용하여 배들이 정박하고 있었다. 즉, 옛날과 지금의 쓰임은 다르지만 굴항의 쓰임은 변함없이 소중하게 존재 하고 있었다.
통영, 고성, 삼천포까지. 2박3일의 여정은 결코 길지 않았다. 오롯한 채움을 위해서 떠났고, 세 달이 지난 지금까지도 마음에 무언가 가득 차있음이 느껴진다. 대학생 때 여행을 가서 배울 수 있는 것이 분명 존재한다. 학우들도 부산과 가까운 경남을 찾아 이 배움을 함께 누릴 수 있다면 좋겠다.  

   
   
 
 
   
 
 
이은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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