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1.14 화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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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기획 시대별로 보는 영화 속 부산
1970년대, 항구에서 퍼져나간 부산 영화의 흥행
2017년 11월 13일 (월) 17:01:59 김필남 영화평론가 deupress@deu.co.kr

1970년대의 한국영화는 걷잡을 수 없는 쇠퇴기를 맞이한다. 한국사회의 급속한 산업화와 더불어 텔레비전의 보급은 영화산업을 암울하게 만들었다. 여기에 영화에 대한 통제와 검열 때문에 또 다른 시련을 맞았다. 1973년 개정된 영화법은 한국영화를 특정한 제작경향으로 몰아가며 스스로 암흑을 자초한다. 부산 영화계의 사정도 다르지 않았다. `부일영화상'은 1973년 16회를 마지막으로 막을 내렸으며, 부산 로케이션도 많지 않았다. 하지만 홍영철 선생은 암흑의 시대임에도 부산개항 100주년을 기념한 제22회 `아시아영화제'가 부산에서 개최된 것과 8미리소형영화의 시대로 아마추어 영화동호인들이 그 중심권에서 활약한 것이 부산영화문화의 또 다른 저력을 보여준 것이라 보고 있다.

 

   
영화 <눈물젖은 부산항> 포스터

마도로스, 부산
이런 저력에 힘입어 어떤 작품들이 탄생했을까. 바다가 근접해있는 지역 특성상 1970년대 영화 속 부산은 특히 `항구'와 관련된 작품들이 눈에 띤다. 〈눈물 젖은 부산항〉(강대진·1970), 〈항구의 등불〉(이상언·1972), 〈제3부두 고슴도치〉(이혁수·1977), 〈돌아와요, 부산항〉(김성수·1977) 등이 부산의 항구영화라고 할 수 있다. 이들 영화는 1960년대 중반부터 등장했으며 항구를 배경으로 범죄, 스릴러 그리고 사랑이 결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영일은 이를 `마도로스 영화'의 경향으로 분류한다.
부산을 로케이션 장소로 사용하지는 않지만 당시 항구영화들을 살펴보면 〈제3부두 0번지〉(김시현·1966), 〈비정의 항구〉(강민호·1968), 〈항구 8번가〉(임원식·1969), 〈돌아온 선창〉(전조명·1969), 〈항구 무정〉(정진우·1970), 〈항구의 왼손잽이〉(강범구·1971), 〈돌아온 항구의 사나이〉(전우열·1970), 〈비 나리는 선창가〉(임권택·1970), 〈홍콩의 단장잡이〉(최영철·1970), 〈홍콩의 마도로스〉(최영철·1970), 〈공포의 황금부두〉(이혁수·1971), 〈황혼의 제3부두〉(전우열·1971) 등이 있다. 이들 영화는 제목만 들어도 대략적인 내용을 이해할 수 있다.
부산과 관련된 항구영화 〈눈물 젖은 부산항〉을 보자. 해양대학을 졸업한 민호(신성일)는 은사의 딸 애리(김지미)와 장래를 약속하고 항해 길에 오른다. 6년의 오랜 항해 길에서 돌아온 민호는 부푼 가슴을 안고 애리를 찾았지만 그녀는 이미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되었다. 민호는 애리의 배신에 분개하지만 그녀의 사정을 듣고 그럴 수 있는 일이라며 이해하려 노력한다. 이후 허탈한 가슴을 안고 다시 항해 길에 오른다. 이때 뱃고동이 울리고 애리가 달려온다. 그리고 그 동안 고이 길러 온 아들 석이를 민호 품에 안겨주고 눈물을 흘리며 이별한다.
이 영화는 다른 항구영화들과 달리 연인의 사랑과 이별에 맞추고 있다. 항구영화들은 대체로 항구의 이권이나 밀수를 둘러싼 범죄조직이 등장하고 조직과 연계된 의리의 사나이가 있다. 그에게는 사랑하는 여성이 있는데 조직 내 배신이나 다른 조직의 공격 때문에 피신했다가 돌아와 복수를 하고 다시 연인을 찾는다.
이때 강하지만 외로운 남성을 보여 주기 위해 마도로스의 낭만적 이미지로 포장하고 있으며 연인과의 사랑을 더 극적으로 그리기 위해 바다가 배경으로 이용 된다. 남성들의 격한 싸움을 강조할 때는 부두의 하역장이나 폐선 근처로 장소를 설정한다.
대부분의 항구영화에는 당대 최고 액션 스타인 박노식과 신세대 액션 스타 김희라가 등장하는 경우가 많았다. 또 항구영화들은 가끔 홍콩과 일본을 연결해서 반공영화 또는 반공첩보영화로 바뀌기도 했다. 가령 신경균 감독의 〈마도로스 박〉(1964) 같은 영화는 밀수혐의로 체포된 마도로스 박이 압송 도중 탈출하다가 조총련계 간첩들에게 총격을 당하지만 구사일생으로 살아남고 10여 년 후 국내로 귀국해 간첩 일당에게 복수한다는 내용을 그리고 있다.

   
영화 <바보들의 행진> 포스터

영화 속 공간의 모순
항구 영화들에 부산이 언급되고는 있지만 실제 촬영은 인천에서 했다. 영화 속 주인공은 부산항에 도착해 건달조직과 갈등을 벌인다. 홍콩이나 일본으로 출항하거나 입항하는 것 역시도 부산이다. 그러나 실제 영화를 촬영하기 위해서는 부산보다는 인천이 가깝고 제작비를 절감하는 데도 최적의 장소였을 것이다. 그래서 해운대나 오륙도 같은, 누구나 알 수 있는 부산 명소에서 몇 장면을 촬영하고 나머지 장면은 세트나 항구도시 인천에서 촬영했다.
〈돌아온 항구의 사나이〉 같은 영화는 부산이 배경이지만 인천의 자유공원과 홍예문이 영화 배경으로 그대로 등장하고, 〈황혼의 제3부두〉에서도 부산이 배경이지만 인천의 배에서 촬영했다는 것이 화면에 그대로 드러난다. 더욱 이상한 것은 부산을 배경으로 하면서도 영화 속 인물 가운데 아무도 부산 사투리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부산이지만 부산이 아니고, 인천이지만 인천도 아닌 제3의 공간이 되어 버린다. 항구영화는 항구라는 특정 도시의 이미지가 중요하기 보다는 항구라는 조건만 갖추면 되는 것처럼 보인다. 김남석 평론가는 부산을 배경으로 한 영화를 두고 "항구도시라는 특성에 기인할 뿐, 항구가 담고 있어야 할 문화적·지역적·정서적 디테일에서는 성취를 거두지 못했다"고 말한다. 즉 항구에서 살아가는 노동자들의 삶은 담아내지 못하고 항구를 배경으로 한 의리와 복수 또는 연인들의 만남과 헤어짐의 공간으로 단순하게 재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는 새로운 시선으로 항구를 바라보아야 한다는 말이다.

   
영화 <마도로스 박> 포스터

아, 하길종!
1970년대를 대표하는 감독으로 `하길종'을 꼽을 수 있다. 1941년 부산 초량에서 태어나 미국 UCLA에서 영화연출 학위를 받고 70년대 귀국한 하길종은 72년 〈화분〉으로 충격적인 데뷔를 한다. 더 많은 작품을 보면 좋을련만 세상을 뜰 때까지 7편의 작품 밖에 만들지 못했다. 그의 영화에 대한 실험정신은 한국의 천재 감독으로 불리는 데 손색이 없다. 특히 그는 70년대에 부산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친다. 1972년에는 부산대학교 영화연구회가 주최한 행사에 초청되어 `최근 미국 영화의 새 경향'이라는 강연을 하였고, 1978년에는 부산 태평양화학에서 개최된 `전국 신인 남녀 신인 배우 선발 대회'에 심사위원으로 참석하기도 했다. 그 뿐만 아니라 1978년에는 이장호 감독의 〈별들의 고향〉의 속편인 〈속 별들의 고향〉, 1979년에는 〈바보들의 행진〉의 속편인 〈병태와 영자〉를 연출했다. 두 작품 모두 최인호의 소설을 각색했으며 부산에서 로케이션한 작품이다.
하길종의 대표작은 〈바보들의 행진〉이다. 이 영화는 철학과를 다니는 병태(윤문섭)와 영철(하재영)이 군입대 신체검사를 받고 각각 합격과 탈락 통지를 받으며 시작한다. 그리고 병태는 단체 미팅에서 영자(이영옥)를 만나 데이트를 즐긴다. 얼마 후 영자는 병태가 돈도 없고 철학과는 전망도 없다는 이유로 절교를 선언하고, 부잣집 아들 영철은 대학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채, 순자(김영숙)만을 좋아하고 있다. 하지만 순자는 남들과 다른 영철을 거부한다. 술만 마시면 동해로 고래를 잡으러 가겠다던 영철은 실연을 당한 후, 동해 바닷가 절벽으로 가고 몸을 던진다. 이때 고래를 찾아 떠나는 곳이 부산 태종대다. 이후 병태는 무기한으로 휴교한 빈 교정을 서성이며 괴로워하다 입대를 한다. 하길종의 마지막 작품이기도 한 〈병태와 영자〉는 영태가 군대 제대를 2개월 앞두고 일어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바보들의 행진〉은 1970년대 대학생들의 꿈과 그 꿈이 절망되는 과정과 고뇌를 섬세하게 재현하고 있다. 하지만 이 영화도 사전검열과정에서 많은 장면들이 삭제되어 난도질 당한 채 상영되는 검열을 피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영화는 흥행에 성공했고 통기타, 청바지 그리고 맥주로 상징되는 청년문화를 대표하는 영화가 되었다.
하길종 감독이 세상을 뜬지도 38년이 되었다. 이 시간동안 청년과 사회의 미친 영향은 그 누구보다 막강할 것이다. 하길종 감독은 사회비판적인 내용을 담아내 1970년대를 대표하는 감독이자 영화평론가였다. 그는 한국영화의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으며 그 누구보다 영화를 사랑하다 살아간 인물이였다. 이 천재감독을 부산의 감독이라고 부르는 건 어불성설일 것이다. 하지만 그가 부산의 자랑임은 틀림없어 보인다.
                                                                                               김필남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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