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1.14 화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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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늘진 동네의 소외된 사연
2017년 11월 13일 (월) 16:38:26 이은지 기자 dldmswl550@naver.com

산업도시를 문화공간으로 바꾼 영국의 셰필드, 폐쇄된 철도를 공원으로 탄생시킨 미국의 하이라인파크처럼 세계 곳곳에는 `도시재생사업'이 성행하고 있다. 도시재생사업이란 산업화로 인해 생긴 낙후된 장소들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사업을 말한다. 부산은 우수 도시재생사업의 도시로 꼽힐 정도로 변화가 눈에 띤다. 이번 호는 부산 내 탈바꿈 된 장소 두 곳을 방문하여 과거 역사와 함께 현재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편집자 주〉

6·25전쟁 이후 실향민들은 부산에 모였다. 평지가 좁은 부산에서 실향민들의 대부분은 산위에 판자촌 집을 지었는데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산위의 집들은 낙후가 되었고 주민들의 불편함은 쌓여갔다. 불편함을 해소하고자 부산광역시는 1964년 초량동에 산동네와 산동네, 산동네와 산밑동네를 연결하는 산복도로를 개통하고 버스가 다닐 수 있는 길을 만드는 산복도로 르네상스 사업을 진행했다. 이에 산동네 사람들은 주거지인 산 위와 생산 활동지역인 산 밑을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게 되었다. 마을은 전의 모습과는 다르게 다양한 사람이 오갔고 마을은 활기가 생겼다. 부산의 주요 관광지인 감천문화마을은 이렇게 탄생하게 되었다.
감천문화마을처럼 지역주민의 생활 불편 해소와 새로운 관광 자원 개발을 통해 문화공간을 만들어내는 사업을 바로 `도시재생사업'이라고 한다. 산복도로 르네상스 사업의 성공에 힘입어 부산광역시는 아미동 비석마을, 호석마을과 같은 마을 40개를 재생구역으로 선정하여 개발 중이고, 생태공원과 같은 자연친화적인 공간도 함께 조성 중이다. 진구 Park-Way, 북구 행복 마을, 하단 젊음의 거리가 그 예이다. 컨테이너 부두였던 마을이 바뀐 `감만창의문화촌'과 국내산업의 주요 저력이었던 `깡깡이 마을'이야기를 들어보자.

문화가 있는 감만동에 가다

   
학생들의 작품이 전시되어있는 컨테이너 박스 전시관.

줄지어있는 컨테이너 박스를 흔히 볼 수 있는 감만동에는 `감만창의문화촌'이 있다. 과거 감만동은 지금보다 더욱 큰 철강공장과 기업들이 밀집한 동네였다. 하지만 산업형태가 변하면서 많은 공장들이 문을 닫고 건물만 남았다. 비슷한 시기에 감만동의 동천초등학교 역시 이전으로 인해서 2년간 쓰임 없이 건물만 남았다. 이 건물을 새롭게 탄생시킨 것이 지금의 감만창의문화촌이다. 감만창의문화촌은 부산문화재단·부산공연예술연습공간·감만종합사회복지관으로 이루어져있어서 복합문화커뮤니티 공간이라고 불린다. 입구에는 학생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는 컨테이너 형태의 구조물이 있고 건물 내부에는 층마다 지역 빵집에서 기부한 빵을 나누는 곳, 아기용품 대여점 등 지역주민들을 위한 공간들이 존재한다. 돌봄교실의 야간보호교사인 김민성(가야동·32) 씨는 "문화공간이 있기에 아이들과 활동을 위해 근교에 나가기도 하고, 간식을 먹으며 이야기도 한다"며 문화공간의 긍정적인 면을 말했다.
오랫동안 사람들이 모이지 않다가 건물이 탈바꿈을 하면서 퇴근 후 운동하는 직장인, 공부하기 위해 온 학생, 문화생활을 하는 어르신들 모두가 감만창의문화촌으로 다가왔다. 어두웠다가 빛을 찾은 곳은 학우들 주변에도 많이 있을 것이다. 이 공간을 찾아가서 주민과 어울려 이야기해보면 의미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아름다운 섬, 깡깡이 이야기

   
알록달록한 색이 칠해져있는 깡깡이마을의 주택 벽. 

영도대교를 건너면 바로 보이는 `깡깡이마을'은 대평동이라는 이름을 가진 작은 마을이다. 1970년대 영도에는 선박을 수리하기 위한 배들이 끊임없이 들어왔다. 들어온 배의 뱃전에는 항상 녹과 조개류들이 붙어있었는데 이를 떼어내기 위해 사용한 도구에서 `깡깡'소리가 나 깡깡이 마을로 불리게 되었다. 처음에는 낙상사고가 자주 발생하는 작업에 아무도 나서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마을의 여인들은 살림에 보탬이 되고자 일을 자처했다. 여인들의 희생으로 세워진 마을은 조선업의 발상지가 되었다. `깡깡'거리는 소리는 마을주민들의 성실함을 대변 것이자 고된 삶의 애환을 들려주는 소리인 셈이다.
폐허와 다름없을 정도로 칙칙한 마을은 어떻게 변했을까. 깡깡이마을은 조선업의 명성을 이어받아 여전히 바이칼조선, 삼화조선소 등 십여 곳의 수리조선소와 이백 여 개의 선박부품업체가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기계의 발달로 작업을 하는 여인들은 현재 스물 명이 채 되지 않는다. 깡깡소리는 사라져가고 마을에는 밝은 색의 정크하우스, 밤길을 밝히는 구름가로등, 푸른 녹지의 쌈지공원이 채워졌다. 또 지역주민들이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생활문화센터가 생겨나 얼마 전에는 마을 축제가 열리기도 했다.
"깡깡이 마을에서는 못 고치는 배가 없다"는 말이 있었다. 그만큼 영도의 수리선박산업은 타의추종을 불허 할 만큼 뛰어났다. 알록달록 변해져있는 마을의 모습 뒤에 있는 역사를 살펴보면 근데 조선산업의 맥락을 읽을 수 있다.
깡깡이마을에서 벽화그림에 색을 칠하고 있었던 구헌주(사하구·38)씨는 색칠하고 있던 배 그림을 가리키며 "관광객이 아닌 주민들이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고 싶어요. 어르신들의 얼굴과 배의 앞면이 닮았다는 생각을 했고, 그것을 표현 한 것이 이 그림이에요"라고 말했다. 구 씨의 말처럼 도시재생사업이란 거주하는 주민들의 삶의 질이 우선적으로 개발되어야하는 사업이다. 이에 부산광역시는 공공 기관, 기업체, 주민이 참여하는 민·관 협의체를 만들어 인간 중심의 사업으로 육성하기 위해서 힘쓰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 부산의 낙후된 공간들이 시민들을 위해서 어떤 방향으로 바꿔질지, 마을사람의 불편함이 어떻게 개선될지가 기대된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도시 속에서 공간을 없애지 않고 유지하여 발전한다는 것은 기쁜 소식이다. 낡고 볼품없던 벽에도 아름다운 한 폭의 벽화가 그려지듯 모든 공간은 저마다의 이유로 가치가 있다. 찬바람이 부는 입동에 접어들면서 부산의 경치는 더욱 장관이 되었다. 이 아름다운 공간에서 펼쳐지는 도시에서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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