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1.14 화 10:54
> 뉴스 > 문화 · 정보
     
[연재 기획]시대별로 보는 영화 속 부산
① 부산의 옛 모습 간직한 `부산영화'의 발자취를 따라 걷다
2017년 09월 01일 (금) 12:38:09 김필남 영화평론가 deupress@deu.ac.kr

영화를 보는 이유는 모두 제각각이다. 누군가는 휴식을 취하기 위해서, 어떤 이는 재미나 감동을 얻기 위해서 극장에 갈지도 모른다. 각자 영화를 보는 다양한 이유나 방법들이 있겠지만, 이제는 하나의 장르가 된 `부산영화' 속에서 부산은 어떤 방식으로 드러나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부산은 역사의 질곡과 함께 변화와 발전을 거듭해왔고, 부산영화는 도시의 민감한 부분을 잘 포착해냈다. 그런데 영화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재현하지는 못한다. 감독의 의도에 따라 서사나 이미지는 왜곡되거나 변형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영화는 정치적 도구로 이용되는 데에 손쉬웠으므로, 영화 속 부산의 모습을 볼 때도 주의해야 할 것이다. 달리 말해 영화만큼 부산의 정체성을 잘 포착할 수 있는 매체도 없지만, 부산을 하나의 고정적 이미지로 정착시키는 데 영화만큼 큰 기여를 한 매체도 없다는 뜻이다.
이 기획은 총 4번에 걸쳐 연재될 예정이며, 영화가 어떤 방식으로 부산을 포착하고 있는지를 시대별로 고찰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부산의 역사와 장소성의 변화를 구체적으로 사유해보고, 나아가 부산사람이라면 맹목적으로 가지는 부산영화의 긍정성에서 벗어나 부산영화를 `다양한 입장'에서 사유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 〈오발탄〉 포스터

`부산영화'의 시작
도대체 부산영화란 말은 언제부터 썼을까? 많은 이들이 1996년 `부산국제영화제'가 개최된 이후부터 부산이 영화도시가 되었다고 알고 있다. 그런데 부산은 그보다 훨씬 앞선 시기부터 영화와 밀접한 관련을 맺어온 도시다.
1876년 조선에서 가장 먼저 개항된 부산은 일본과 가까운 위치에 있는 관계로 경성이나 인천보다 빠르게 근대문물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로 인해 1895년 부산에 상설극장이 건립됐다. 상설극장이 세워진 이유는 일본인 거류 지역에 일본인의 증가 때문이기도 했지만 부산이 조선에서 가장 먼저 극장이 세워진 곳임은 분명하다. 1904년에는 부산 최초의 활동사진(영화의 옛 호칭)이 상영된 극장 `행좌'가 생기고, 이후 송정좌, 부귀좌, 부산좌 등의 극장들이 줄을 이어 개관한다.
부산을 영화도시로 보는 또 다른 이유는 1924년 설립된 `조선키네마주식회사'에서 찾을 수 있다. 조선키네마는 우리나라 영화 산업의 시초이다. 물론 일본인의 자본과 기술력으로 설립된 것이기는 하지만, 한국인 배우의 재능이 합세하였다는 데서 의미 있다. 조선키네마는 주식회사라는 제도를 최초로 도입하여, 영화 〈해의 비곡〉(1924)과 〈운영전〉(1925) 등 4편의 영화를 제작했으며, 나운규·안종화·이경손 등 초기 영화인들이 이곳을 거치면서 인적네트워크를 형성했다는 점에서 당시 부산 영화 산업의 선진성과 역사성을 말해준다.
1931년에는 `영화 동인회'가 창립되었고, BIFF 광장의 모태가 되는 소화관(1930, 동아극장)과 부산극장(1934)이 차례로 개관을 하며 영화도시의 자리를 잡아간다. 1940년대에 접어들고는 일본의 강압적인 문화예술 검열로 부산 영화 또한 발전의 길이 막혀 암흑기의 길을 걷게 된다.

   
영화 〈가거라 슬픔이여〉 포스터

한국전쟁과 부산영화
1950년대는 한국전쟁 발발로 유례없는 혼란기였음에도 부산영화의 격동기라고 할 수 있다. 영화인들은 임시 수도 부산을 근거지로 대구와 진해 등에서 활동을 이어나갔고, 한형모·안종화 등의 감독들은 부산에 짐을 풀었다. 미래의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유현목 감독도 부산으로 피난을 왔다. 그는 당시 영도다리에서 노점상을 하던 모친이 교통순경에게 발길로 차이는 장면을 목격하는데, 그때의 참담함을 영화 〈오발탄〉에 담아냈다고 전해진다.
부산으로 피난 온 영화인들은 1952년 `한국평론가협회'를 발족했고, 1956년에는 부산대학교 영화연구회를, 1958년에는 지역 최초로 `부산영화평론가협회'를 설립했다. 또한 같은 해 부산일보가 주관하는 `부일영화상'이 제정되었고, 부산영화촬영소가 설립되는 등 전쟁의 여파로 힘든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영화계는 영화산업뿐만 아니라 영화이론 등의 중요성을 인식하며 내실을 키워나갔다.
전쟁으로 영화제작의 기반을 잃은 상태에서 군과 관이 주도한 `문화영화'나 국방부 정훈국과 공보처가 중심이 되어 `뉴스영화'가 만들어지는 시점에서 부산 로케이션 극영화는 주목할 만하다. 영화 〈삼천만의 꽃다발〉(1951)은 한국전쟁이 치열했던 당시, 부산에서 제작하고 부산과 마산에서 촬영한 극영화다. 전쟁기에 제작된 극영화 숫자가 50년에 3편, 51년 2편, 52년 6편, 53년 5편이었음을 감안하면 〈삼천만의 꽃다발〉은 완성 그 자체만으로 의미 있어 보인다.
이 영화는 전쟁터에서 눈을 잃은 상이용사에게 어머니가 눈을 이식하는 모성애를 담고 있다. 1952년 제작된 계몽영화 〈낙동강〉(전창근 감독)은 현재 원본은 남아있지 않지만 부산 출신 예술인들과 학생들이 모여 만든 대표적인 다큐멘터리 영화로 부산의 예술과 낙동강의 의미를 살필 수 있다.
조긍하 감독의 〈가거라 슬픔이여〉(1957)는 정일성 촬영감독의 첫 작품으로 부산에서 촬영했으며, 대중들에게 큰 사랑을 받은 작품이기도 하다. 영화는 부산으로 출장 온 서울 남자 `재수'가 순진한 여자를 임신시키고 헤어진 후, 오랜 시간이 지나고 부산에서 딸 `영옥'과 재회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영화는 피난민의 궁핍한 삶, 전쟁고아를 연상시키는 소녀 가장, 월남한 사람의 상징인 신기료 장수, 아름답고 정숙한 과부, 억센 뱃사람 등이 모여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등 가슴 따뜻한 장면을 엿볼 수 있다.
한편, 영화 속 부산은 연대할 수 있는 장소이지만, 오래 머무는 장소가 아니라 떠나야 하는 장소로 인식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국전쟁과 피난의 기억의 담은 노래 `이별의 부산 정거장'이 허투루 나온 건 아닌 듯 싶다. 참고로 영화 〈청춘쌍곡선〉에서 이별의 부산 정거장을 김희갑이 노래하고, 작곡자인 박시춘도 깜짝 등장하고 있어 극의 재미를 보탠다.

   
영화 〈청춘쌍곡선〉 포스터

명랑 코미디로 흥행까지
한형모 감독의 영화 〈청춘쌍곡선〉(1956)은 해방 직후 부산을 가장 실감나게 포착한 영화라는 데 그 의미가 있다. 더불어 코미디와 뮤지컬의 장르적 요소를 활용하여 영화의 재미를 높이며 50년대 최고의 희극영화로 꼽히며, 1957년도 한국영화 흥행 순위에서 5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영화는 친구 사이인 가난한 `명호'와 부유한 `부남'이 우연히 병원에서 만나면서 시작한다. 의사는 한 사람은 너무 못 먹어서, 다른 한 사람은 너무 잘 먹어서 생긴 병이라고 진단을 하며 두 사람이 서로 환경을 바꿔서 생활해볼 것을 권한다. 두 사람은 의사의 말에 따라 2주간 생활을 바꾸고, 바뀐 환경에서 만난 친구의 여동생을 사랑하게 된다.
영화는 명랑 코미디를 내세우고 있기 때문에 한국전쟁 직후의 시대적 혼란함이나 전쟁의 상흔이 잘 드러나지는 않는다. 한국전쟁 이후 국가 재건에 힘써야 할 시기임을 짐작한다면 어두운 내용보다 밝고 명랑한 이야기가 사랑받는 것이 당연해 보인다.
〈청춘쌍곡선〉은 영도 판자촌에서 바라본 북항과 부산 도심의 모습을 자주 보여주며, 도개되는 영도다리에 막혀 이야기를 나누는 주인공들이나, 송도해수욕장에서 연인들이 데이트를 즐기는 등 옛 부산의 모습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런데 한형모 감독은 50년대 부산을 재현하는데 그치지 않고 영도다리를 기점으로 양옥집이 있는 도심과 산비탈의 판자촌을 비교하는 장면을 자주 비추고 있다. 마치 전쟁 직후 더욱 극심해진 빈부격차의 문제를 고발하는 것처럼 보여서, 이 코미디 영화를 마냥 즐겁게 볼 수만은 없어 보인다.
그 외에도 1950년대 중반 이후가 되면 사극영화 붐이 일어나는데, 부산 로케이션 작품으로 〈춘향전〉(1955)과 〈논개〉(1956) 등이 있다. 〈춘향전〉의 경우 부산 로케이션 영화로 한국영화의 사극붐을 일으키는데 일조하지만, 사실 부산의 공간성·시간성·역사성을 지우고 있어 부산영화라고 명명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 동의대신문(http://www.deupress.or.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기사의견(0)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전체기사의견(0)
최근 인기기사
요르단 내 시리아 난민 학교 건립
꼴뚜기
거북이
산업디자인전공 27명 각종대회 수
부산진구와 지역발전포럼 창립
동문 교수 및 직원 장학금
태권도진흥재단과 업무 협약
`올해의 대학박물관' 수상
디그니타스교양교육연구소, 명사 특
[잡(JOB)서포터즈 알짜정보]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614-714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엄광로 176번지 동의대학교 상영관 3층 동의언론사 신문편집국
Tel 051-890-1792~3 | Fax 051-890-1819
Deupress.or.kr의 모든 컨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고 있으며, 무단 전재ㆍ복사ㆍ배포 등을 금합니다.
Copyright 2008 동의대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deupress@de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