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1.14 화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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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부산의 속내 엿보기
전쟁의 아픔 딛고 평화를 기원하다
2017년 06월 02일 (금) 14:48:01 나여경(소설가·요산문학관 사무국장) deupress@deu.ac.kr


부산의 속내 엿보기는 영화의 도시, 산과 바다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관광지라는 화려한 외형 안에 숨은 부산의 속내를 살펴보고자 하는 시도에서 마련되었다. 이는 부산의 역사를 알고 이해하기 위한 바탕이 될 것이다. 사람이든, 도시든, 사물이든 겉으로 보이는 외형이 전부가 아니라는 말은 백 번을 되풀이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여 지형적인 특성으로 인해 만들어졌든 외부의 환경적인 요인에 기인해서 새겨졌든 시간이 흐르면서 부산의 스토리가 되고 역사가 되어 알게 모르게 사람들의 의식과 삶의 방식을 지배하면서 축적된 부산의 속내를 엿보고자 한다. 그 네 번째 이야기는 전쟁의 상흔들이다. 〈편집자 주〉

재한유엔기념공원
`아직도 그대 이름은 찰리'

   
 유엔기념공원 내 기념관과 추모관

`턴 투워드 부산(Turn Toward Busan) 캠페인'을 아는가? 매년 11월 11일 11시에 1분 동안 전 세계의 많은 국가들이 부산을 향해서 묵념을 한다. 한국전쟁 중 희생된 유엔군 참전용사들의 고귀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서인데 현재 남구 유엔평화로에 위치한 재한유엔기념공원에는 한국전쟁 중 전사한 4만여 명의 유엔군 장병 중 2천300명의 영혼이 잠들어 있다.
유엔 기념공원은 유엔에서 지정한 세계유일의 성지로 대한민국에서 영구히 기증한 토지 위에 1951년 1월 18일 조성되었다. 이곳은 유엔군 사진 자료와 기념물, 방문 기념패 등을 전시한 기념관을 비롯해 김중업의 설계로 건립된 추모관, 각국별 전투 지원 내역과 전사자 숫자가 새겨진 유엔군 위령탑이 조성되어 있다. 또한 유가족이 제공한 안장자 사진 및 여러 기념품이 전시된 제2기념관, 무명용사의 길, 유엔군전몰장병 추모명비 등이 정갈하게 정리되어 있다.
유엔기념공원 정문은 유엔 관련물 중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로 평가받는다. 기념관과 추모관을 지나면 17세 어린 나이에 전사한 도은트를 기리기 위해 만든 `도은트 수로'가 이어져 있다. 안장된 이들의 애달픈 사연을 전하듯 5월의 핏빛 장미가 주묘역에 무성하다.
영국 전몰용사 헤론 상병의 아내 엘렌은 언제나 죽으면 남편 곁에 묻히고 싶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죽기 전 5년간 치매에 시달린 그녀는 정신이 돌아올 때마다 돈을 관리하고 있는 딸에게 "내가 한국에 갈 수 있는 돈이 있느냐?"고 물어보곤 했다. 결국 치매에 걸려서도 남편을 잊지 못하던 엘렌은 2001년 1월 10일 남편 곁에 영원히 잠들었다.
올윈 그린의 남편 찰리 그린은 1950년 11월 1일 30세의 나이로 한국전쟁에서 사망했다. 그녀는 남편 찰리를 잊지 못해 13년 동안 공들여 「아직도 그대 이름은 찰리」라는 한 권의 저서를 집필했다. 평생 마음속에서 떠나지 않은 사랑하는 남편에게 바치는 선물이었다.

"어제 편지가 참 많이 왔군요. 그 중에 당신 편지가 두 통이나 있었습니다. 매주 받는 편지에 감사하는데, 무엇보다 당신이 보낸 편지에 감사하고, 또 기다려진답니다. 정말 이곳은 춥군요. 얼음이 얼고, 맑은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살을 에는 듯한 찬바람이 불어옵니다. 날씨가 더 추워 질 것이라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추운 날씨와 함께 외로움도 몰려옵니다. 이 두 가지 문제는 당신만 있으면 한꺼번에 해결 될 터인데…."
 -찰리 그린 중령의 편지

찰리, 내 사랑!
아침이 그토록 눈부셨던 그 날!
달콤한 작별키스 아직도 남아있는데
곧 돌아온다던 그 손 놓지 말 것을
지구 동쪽 끝 미지의 나라
달빛 곱던 강물이 선홍색 핏빛 되고
내 소중한 당신 잠들던 날
늦가을 붉은 사과 시리도록 아름다웠지요.
다시는 돌아오지 못해도
아직도 사랑하는 그대
 -올윈 그린,
 「아직도 그대 이름은 찰리」 中

이렇듯 애달픈 사연을 간직한 유엔기념공원은 공원이란 이름이 무색하게 일반인들의 접근

   
유엔기념공원 내 주묘역

이 용이하지 않다는 인상을 풍긴다. 유엔기념공원이 묘지가 아닌 진정한 공원의 역할을 하려면 누구라도 쉽게 찾을 수 있는 분위기 조성과 시민들의 끝없는 관심과 각성을 이끌어낼 수 있는 구조가 정착되어야 한다. 이는 이국땅에 잠든 수많은 참전용사들의 죽음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알리는 일이자 그들이 지키고자 했던 이 땅에서 번영을 누리고 있는 이들의 당연한 몫이다. 어린 병사 도은트의 쓰러지지 않는 젊음처럼, 오랜 세월이 흐르고 흘러도 사라지지 않는 그들의 영원한 사랑처럼 이 땅에 평화가 깃들기를 바란다.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
`밀봉될 수 없는 기억'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 내 기증자 기념공간

그 이름에서부터 전쟁의 상흔이 그대로 느껴지는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은 일본에 의해 전쟁현장에 강제 동원된 참상을 널리 알려 역사의식을 함양하고 인권과 세계평화에 대한 교육의 장을 제공하기 위하여 지난 2015년 12월 10일 개관했다. 부산문화회관, 부산박물관, 유엔평화기념관 등 유엔평화문화특구 일원으로 유엔기념공원과 인접한 곳에 위치하고 있다.
4층 상설전시장 입구, 기억의 터널에 들어서면 홀연 강제 동원된 이의 그림자가 등장해 관람객을 전시장 내부로 안내한다. 강제 피해자들의 생생한 증언, 강제 동원 유형과 지역별 현황 등 강제 동원의 실체를 만나면서 발화되기 시작하던 불편한 심기는 조선인 7천여 명을 태운 일본 해군 수송선 우키시마호의 폭발 사고 앞에서 증폭된다. 일본이 항복 선언을 한 후 고향에 돌아갈 기쁨에 들떠 배를 탔던 이들은 1945년 8월 24일 배의 폭발과 함께 영원히 수장되고 말았다. 일본은 이 사건에 대해 미국이 깔아놓은 기뢰에 의해 침몰한 우발적인 사고라고 발표했지만 그들의 비밀을 너무 많이 알고 있는 조선인 노무자들을 수장시키기 위한 일본의 고의적인 격침이라는 것을 수많은 증거 자료가 말해주고 있다. 하지만 현재까지 이 사건에 대한 어떠한 보상이나 조사조차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전쟁이 끝났지만 어떤 보상이나 조치 없이 방치된 사람들은 비단 이들 뿐만이 아니다. 일본 교토의 우토로 마을은 아직도 펌프로 우물물을 길어 사용하고 비가 내리면 도랑이 흘러넘쳐 집 안팎이 침수된다. 이 우토로 마을은 1941년 일본 정부가 교토 군 비행장 건설을 위해 동원한 1천300여 명의 조선인이 함바(밥집)를 중심으로 모여 살면서 형성된 마을이다. 흐르지 않고 멈춘 시간 속에 살고 있는 그들에게 나라를 잃고 당했던 치욕과 설움은 끝나지 않은 채 이어지고 있다.
`그저 한마디 진정한 사과를 듣고 싶을 뿐'이라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고통 역시 밀봉되지 못한 채 흘러가는 시간 위에 떠돌고 있기는 마찬가지이다. 오랜 시간이 흘러 흔적으로 남은 상처를 상흔이라 한다. 하지만 아직 우리 곁을 맴돌고 있는 전쟁의 기억은 상흔이라고 하기엔 흉터가 너무 깊은 것이 아닐까.

산복도로
`새 삶의 터전으로'

유엔평화공원과 일제강제동원역사관에서 느꼈던 암울함을 만회해 주려는 듯 한낮의 산복도로

   
 산복도로

는 활기가 넘친다. 전쟁의 환난을 피해 부산으로 피신 왔던 이들에 의해 산 중턱에 조성된 판잣집들이 형성되면서 조성된 산복도로 마을. 한밤 중 부산항에 내린 외국인들이 산 아래 환하게 켜진 불빛을 보고 한국에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 있었냐며 `원더풀'을 외쳤다가 날이 밝아 드러난 판잣집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는 산복도로 마을 일화는 유명하다.
어깨에 짊어진 무거운 짐과 머리에 인 보따리의 무게로 뼈가 녹아내리도록 오르내렸던 고단한 삶의 현장은 `산복도로 르네상스'의 새 바람을 타고 날마다 새롭게 변신하고 있다. 부산의 아름다운 야경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명소로 각광받고 있을 뿐 아니라 바다 풍경과 산 풍경을 연결하는 전화기처럼 느껴지는 168계단 모노레일, 한국의 슈바이처 장기려 박사를 기리기 위한 장기려 기념관, 산복도로 사람들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이바구 공작소, 1년 뒤 손 편지를 받아볼 수 있는 유치환 우체통 등은 항상 관광객들과 주민들로 북적인다.
산복도로 위에 펼쳐진 우리네 삶의 내력을 엿보고 내려오던 날, 부산항 바다 위로는 황홀한 불꽃놀이가 펼쳐지고 있었다. 포화 쏟아지는 전쟁 중에도, 뼈가 녹아내리는 고단한 인생이어도, 그 지난함을 견디고 극복해 가는 우리네 삶 그 자체가 아름다운 축복이라고 말해주듯이 말이다.  나여경(소설가·요산문학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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