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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기획] 소설 속에서 부산의 장소애 느껴보다
부산의 속내 엿보기 ③ 부산을 배경으로 한 작품
2017년 05월 17일 (수) 15:23:48 나여경(소설가·요산문학관 사무국장) deupress@deu.ac.kr

부산의 속내 엿보기는 영화의 도시, 산과 바다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관광지라는 화려한 외형 안에 숨은 부산의 속내를 살펴보고자 하는 시도에서 마련되었다. 이는 부산의 역사를 알고 이해하기 위한 바탕이 될 것이다. 사람이든, 도시든, 사물이든 겉으로 보이는 외형이 전부가 아니라는 말은 백 번을 되풀이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여 지형적인 특성으로 인해 만들어졌든 외부의 환경적인 요인에 기인해서 새겨졌든 시간이 흐르면서 부산의 스토리가 되고 역사가 되어 알게 모르게 사람들의 의식과 삶의 방식을 지배하면서 축적된 부산의 속내를 엿보고자 한다. 그 세 번째 이야기는 부산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편집자 주〉

요산과 그의 작품들

   
요산 모래톱 이야기의 배경 낙동강

부산을 배경으로 쓴 작품을 논하자면 제일 먼저 요산 김정한의 소설들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이는 요산이 등단작가로는 처음으로 부산 문단에 이름을 올렸다는 이유에서만은 아니다. 등단작 「사하촌」을 비롯해 「모래톱 이야기」, 「굴살이」, 「사밧재」, 「산거족」, 「산서동 뒷이야기」, 「독메」를 비롯해 부산 근교를 배경 삼은 「수라도」, 「뒷기미 나루」 등 그의 많은 작품이 부산과 부산 근방을 배경으로 삼은 까닭이다. 먼저 소작농들의 쟁의를 사실적으로 그려낸 등단작 「사하촌」을 살펴보면 사하촌은 절 아래 마을로 소설 속에서는 성동리로 그려진다. 성동리의 농민과 갈등을 빚는 지주는 보광사의 승려인데 이 작품 속 보광사가 바로 현재 금정구 팔송로에 위치한 요산문학관과 근거리에 있는 범어사이다. 요산은 가뭄이라는 자연재해에도 불구하고 무리한 소작료를 요구하는 보광사의 횡포에 맞서 싸우는 농민들을 통해 농촌의 지난한 현실과 소작농들의 고통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부산의 큰 어른, 정신적 지주, 리얼리즘 소설가 등 많은 별명을 갖고 있는 요산에게 `낙동강의 파수꾼'이라는 또 하나의 별명을 안겨 준 작품은 「모래톱 이야기」이다. 낙동강 하류의 조마이섬에 살고 있는 건우네 가족과 윤춘삼 노인의 이야기를 통해 그 지역 사람들의 지난한 삶을 그려낸 이 작품의 배경은 을숙도이다. 조상대대로 간직한 기억과 추억의 땅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불의와 부조리에 맞서 싸우는 섬사람들의 이야기는 참다운 삶의 의미를 깨닫게 해 주는데 부족함이 없다.
또한 일제강점기 민초들의 저항 정신을 보여주는 「사밧재」의 배경지는 현재 노포동 시외버스터미널 가기 전 양산으로 넘어가는 고갯길로 현재는 사송로로 정비되어 있다. 박 노인과 일본인 이리에쌍이 산서동이란 마을에서 지주들과 싸웠던 옛일을 회상하는 형식으로 쓴 작품인 「산서동 뒷이야기」와 요산이 평생 좌우명으로 여기며 살았던 `사람답게 살아가라'는 문구가 등장하는 「산거족」은 물금 일원이 그 배경지이며 쫓겨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쓴 「굴살이」는 금강공원 일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렇듯 부산과 그 근방을 배경 삼아 민중들의 고달픈 삶과 역사의 질곡을 작품 속에 그려낸 요산의 작품은 "문학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편, 양심의 편, 정의의 편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작가의 책임이고 의무인 동시에 그것을 방해하는 세력에 저항하는 것 또한 숭고한 사명이라고 믿는다"고 일갈했던 그의 언행일치 삶을 그대로 드러낸 증표이다.

누군들 잊히지 않는 곳이 없으랴
부산의 특정 장소가 등장하는 작품은 다수 있으나 기억 속에 남는 작품을 개괄해 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부산이 등장하는 작품은 개화기 소설로 「혈의 누」, 「귀의 성」, 「추월색」을 꼽을 수 있는데 이들 작품에서는 활기 넘치는 항구와 역동적으로 변화해 가는 부산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손창섭의 「비오는 날」과 안수길의 「제3인간형」, 김동리의 「밀다원 시대」는 한국전쟁으로 피

   
 2016 밀다원 시대 문학제

폐해진 인간 군상들의 삶을 통해 그 당시 시대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작품들인데 「비오는 날」에서는 동래, 「제3인간형」에서는 영도의 모습이 그려지고 「밀다원 시대」의 경우는 주 배경지가 광복동으로 묘사되고 있다. 광복동 일대에서는 매년 김동리의 「밀다원 시대」를 기리기 위한 `밀다원 시대 문학제'가 개최되고 있다.
피난시절 완월동과 자갈치 등이 등장하는 이호철의 「소시민」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며 조해일의 「내 친구 해적」은 영도다리를 배경으로 유년시절 이야기가 펼쳐진다. 유익서는 「우리들의 축제」를 통해 매축지 마을의 건물 붕괴 이야기를 그렸다. 주인공의 성장기라고 볼 수 있는 이문열의 「젊은 날의 초상」 역시 부산 낙동강 하구와 하단 일대가 배경으로 등장한다. 부산의 소설가 조갑상의 작품에는 빈번하게 부산 지역 장소가 등장하는데 비극적인 사건을 아름답게 그린 「누군들 잊히지 않는 곳이 없으랴」라는 소설은 작가의 사라져가는 장소에 대한 그리움과 안타까움이 절실하게 담겨있다.
일제강점기였던 1931년 철도국 고등관 관사에서 일어났던 스무 살 조선인 오모니 살인 사건을 지금은 사라진 남선창고와 백제병원 등을 배경으로 아름답게 그려낸 이 작품은 역사적인 사건이 소재가 되었지만 조갑상은 작품 속 주인공의 입을 빌려 "내가 이렇게 입을 연 것은 사라져가는 그 무엇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것은 승덕과 환한 달빛 아래 입술을 나누던 기와까지 붉은 창고가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작품을 쓰게 됐다는 고백에 다름없다.
이처럼 조갑상은 지난 역사의 흔적을 품고 있는 사물과 장소, 아니 부산에 깊은 애정을 품고 있다. 조갑상 소설가 뿐 아니라 부산의 다른 작가들 역시 흥미롭고 매력적인 부산의 장소들에 대해 관심이 대단히 많고 그 관심은 작품으로 재건축되고 있다. 누군들 부산의 잊히지 않는 장소가 없겠는가. 하여 부산의 장소애가 드러난 작품은 앞으로도 다수 나올 것이라 본다.

스토리텔링 된 부산의 장소

   
정태규 편지의 배경 동래읍성

이-푸 투안이 연구한 토포필리아(장소애)가 인간에게 가장 알기 쉽게 적용된 예가 고향애 아닐까 싶다. 한낱 미물인 여우의 수구초심이나 연어의 귀소본능이 있는 터에 인간의 장소애에 대한 부연설명은 사족일 것이다. 하지만 현대인은 산부인과에서 태어나고 잦은 이동을 하며 아파트에서 일생을 보낸다. 하여 장소애는 예전 사람들에 비해 덜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할 수 있지만 마음의 정착지가 없는 현대인에게 특정한 장소에 대한 사랑은 각별할 수밖에 없다. 누군가에게 특별하게 느껴지는 장소는 황폐해져가는 일상의 삶을 내려놓고 자신을 돌아볼 마음의 안식처가 되기 때문이다. 그 장소는 사랑과 추억의 공간이며 사색의 장소이다. 즉 그 장소가 주는 위로와 추억으로 인해 내일을 살아가게 하는 힘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장소에 대한 스토리텔링의 대두는 이와 무관하지 않다. 특정한 사물이나 장소에 이야기를 입힘으로써 정감 있는 추억의 장소로 거듭날 뿐 아니라 오래토록 마음에 남는 장소가 되기 때문이다. 이런 취지에서 특정 공간에 대한 스토리텔링 작업이 갈수록 활성화 되고 있는데 부산의 작가들에 의해 스토리텔링 된 장소를 몇 곳 소개한다.
교통사고로 남편을 잃은 한 여인의 감성과 400년 전 임진왜란이 발발한 긴박한 시점에서 오고간 부부간의 편지에 얽힌 사연을 교차 편집해 지어진 정태규의 「편지」는 30매 안팎의 매우 짧은 글이다. 하지만 소설을 읽고 난 후 남는 여운은 매우 길다. 더불어 동래읍성을 찾아 그 감동을 재확인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하는 수작이다.
박명호의 「야구장에서 돼지를 사냥하다」는 생기 있고 활기 넘치는 사직야구장의 풍경을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으며 전용문의 「온천장의 새벽」은 1960년대 온천장 주변 주점 풍경과 그 당시 순진하고 낭만적인 대학생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데 마치 옛 영화를 보는 듯하다.
이밖에 영락공원을 배경으로 전개되는 유연희의 「영혼들의 집」, 을숙도를 묘사한 박향의 「연인」, 삼락공원이 등장하는 김일지의 「일몰」, 다대포 정경이 펼쳐지는 김서련의 「설레는 마음으로」, 구포시장의 이야기를 그린 고금란의 「아름다운 숙자씨」는 부산의 공간에 사연과 추억을 덧씌워 기억에 남는 장소로 탈바꿈시켰다.
그밖에 용두산 공원, 영도 태종대, 부산진성, 영도다리, 초량, 하얄리아부대, 해운대, 반송, 좌수영교, 광안리, 황령터널, 이기대 등 스토리텔링 된 이 장소들은 이미 유명세를 떨치고 있거나 사라진 공간이지만 색색의 이야기 옷을 입고 친근하게 때로는 따뜻하게, 혹은 애잔하게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있다.
이 외에 부산의 장소애를 드러낸 소설 작품은 수 없이 많으며 시 또한 편수를 헤아리기 힘들 정도다. 부산의 장소애가 드러난 작품들을 찾아 읽으며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향토애를 가져보시길 바란다.  나여경(소설가·요산문학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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