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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현장이 생생하게 남아 있는 부산 중구 속 근대를 거닐다
2017년 05월 17일 (수) 11:28:25 탁연주 기자 deupress@dewu.ac.kr

땅 위에 길이 나고, 길 위에 건물이 들어서 마을이 생기고 문화가 만들어져 역사가 된다. 우리네 모든 땅에는 그동안 흘러왔던 역사들이 자리하고 있다. 한 시대의 건축물은 그 나라의 역사적 맥락을 이어주는 시각적 증거물이자 신빙성 있는 자료이다. 부산의 근대건축물 역시 마찬가지이다. 한국의 근대도시 출발점에 있던 부산 근대건축물들은 매우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부산의 근대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중구에서 오랜 세월 변함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근대의 이야기들을 학우들에게 소개한다.  〈편집자 주〉

부산 근대거리를 걷다보면 조선을 탄압하기 위한 일본의 표독한 분위기가 연상되어 가슴 한 켠이 아려온다. 현재 중구는 과거, 조선일 당시 일본사절과 상인이 외교와 무역을 했던 초량왜관이 있던 곳이다. 초량왜관은 관리 주체가 조선인으로써 외교무역을 위해 조선정부가 민족적 자긍심으로 일본인들에게 내어준 공간이었다. 하지만 1876년 2월, 강화도 조약이 체결됨에 부산은 강제로 근대개항을 하게 된다. 이를 기점으로 200여 년 동안 뿌리 내렸던 왜관은 사라지고 일본인들의 침탈을 위한 전관거류지가 되었다.

 

   
 

부산의 근대 개항
1876년 개항이 된 후, 일본인들은 조선의 쌀을 일본으로 가져가고 일본의 공산품을 조선 시장에 팔기 위해 부산으로 왔다. 조선 후기 조성된 초량왜관이 치외법권 영역인 전관거류지로 개방되면서 일본인들은 조선 정부의 간섭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무역을 할 수 있었다.
조선정부는 개항장인 부산에 관리를 파견하여 감독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인들의 커지는 영향력을 막지 못했다. 또한 조선 상인들은 일본 상인들과 경쟁하면서 성장을 도모했지만 일제의 경제 침략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일제는 조선인들이 살았던 동래를 일본인이 지배하는 부산으로 편입시키는 등 부산을 대륙침략에 필요한 기반시설을 갖춘 근대도시로 만들어 갔다.
전관거류지에는 영사관, 경찰서 등의 공공시설과 각종 업무용 건물, 부두시설, 도로 등이 설치되기 시작하면서 대청동, 부평동 방향으로 확대되었고 현 자갈치 쪽의 해안을 매립하며 완전하게 자리잡았다.

 

   
 

용두산 공원
용두산은 산의 형태가 바다에서 육지로 치고 올라오는 거대한 용의 머리를 닮았다 하여 용두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도심 속, 우거진 수풀로 시원한 휴식처를 제공하고 있는 용두산 공원의 시작도 일본의 근대개항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선시대부터 존재했던 초량왜관에는 여러 신사들이 있었다. 부산의 신사는 한국에서 보통 신사들이 설립되었던 1900년∼1915년보다 훨씬 앞서 운영되었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초량왜관 시절 용두산을 중심으로 변재신사, 도하신사, 금도비라신사, 조비나신사 등을 포함하여 용미산(현재 광복점 롯데백화점)의 옥수신사 등 5개의 신사가 있었다. 그리고 신사에 모셔진 신들 또한 재물, 상업, 항해의 안녕 등과 관련된 신들이 모셔져 부산 내 일본인들의 삶에 안식을 주었다.
1915년 어대전 기념사업으로 출발한 용두산공원 조성사업은 1916년 10월 15일 준공식을 거쳐 현재의 용두산공원이다. 대개 신사들의 경우 신사조성을 위해 신사 주위를 공원으로 만드는 것이 일반적 경우인데 용두산 신사는 그 반대로 용두산 공원 조성 과정에서 용두산 신사를 정비하였다는 특이점을 가지고 있다. 용두산 신사는 일제가 패망할 때까지 부산 거주 일본인들의 각종 행사를 진행하는 공간으로 사용되다가 해방 이후 화재로 흔적이 사라지고 공원만이 남아 있다. 산책을 위해 용두산 공원을 찾은 정모경(25·동래구)씨는 "용두산 공원이 역사의 한 현장인 것은 전혀 몰랐다. 태어나서 쭉 부산에 살고 있지만, 정작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 대해서는 무지했던 것 같다. 공원의 시초 이야기를 들으니 불타기 전의 모습이 궁금하고 구체적인 역사 공부를 하고 싶어졌다"며 "용두산에 관한 스토리텔링이 잘 이루어진다면 부산인과 관광객들에게 더욱 뜻 깊은 장소가 될 것 같다"고 전했다.

 

   
 

부산근대역사관
부산의 근대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근대역사관은 1929년 동양척식주식회사의 부산지점이었다. 광복 이후 50년간 미군 숙소, 미국 문화원으로 사용되다가 부산시민들의 건물 반환운동을 통해 1999년에 부산시에 반환되었다. 부산시는 외세 주둔의 상징이었던 이 건물을 통해 격동의 근대사를 알리고 교육할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하기 위해 이곳을 부산근대역사관으로 개관했다.
1층에는 학예연구실, 사진으로 보는 근대 풍경, 영상실이 있어 시각적인 볼거리가 풍성하고, 2층엔 부산의 근대 개항, 일제의 부산 수탈, 근대도시 부산에 대해 전시되어 있다. 동양척식주식회사에 대한 전시실이 있는 3층에는 전차 모형, 일제강점기의 대청동 거리 등 `부산 근대 거리'를 재현해 당시의 생활을 엿보는 체험을 할 수 있다.
근대 역사 및 문화와 관련된 다양한 주제의 기획전시를 매년 개최하고 있는 근대 역사관은 부산 역사에 대해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배움터이다. 관내에서 전시안내를 하고 있는 김채원(35·서구)씨는 "평일엔 약 100명에서 300명이 방문하고 주말에는 약 400명의 관람객이 찾는다. 하지만 부산 시민의 비중은 크지 않다. 다른 지역인들이나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만이 방문을 한다"며 부산인들의 부산 역사에 대한 무관심에 아쉬움을 토로했다. 이어 "근대역사관에서 왜곡된 과거 지식을 바로 잡기 위한 홍보나 소개가 더 활발하게 이루어 졌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내 인생 하나도 버겁다고 하는 요즘, 마음 속 짐은 잠시 내려놓고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 땅의 시작점이 어디인지 관심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강을 거슬러 가 보면 물줄기의 시작을 찾을 수 있다. 익히 알고 있는 부산의 지명이나 공간들이 왜 그 이름인지. 왜 그 곳에 위치했는지를 알게 된다면 부산을 향한 마음가짐이 달라질 것이다. 도심 속에서 쉽게 접근 할 수 있는 부산 중구의 근대거리를 거닐어 보며 한 때 얼룩졌던 부산에 대해 알아보자.

 

일제강점기 1931년 부산 중심가 지도(부산부교역사연구소 자료)

   
 

 

부산 중구 관광 안내지도 `살랑살랑 걸어서 중구'(부산광역시 중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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