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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철의 시네마 Talk Talk
데오도르 멜피 『히든 피겨스』
2017년 04월 12일 (수) 18:59:04 김병철(영화) 교수 deupress@deu.ac.kr

1957년 소련은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발사한다. 수많은 인공위성들이(심지어는 사기업의 인공위성까지) 지구 궤도를 돌고 있는 현재의 관점에서 보자면 그리 큰일도 아니겠지만 미국과 소련이 끝없는 군비증강으로 냉전의 강도를 올려가던 그 시점에는 이는 단순한 과학적 업적을 넘어서는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미국의 입장에서 보면 적국의 위성이 자국의 하늘 위를 날며 자신들을 감시하게 되었다는 사실은 충격과 공포 그 자체였다. 스푸트니크 쇼크라고 불리는 이 사건을 계기로 미국은 미우주항공국(NASA)를 설립하고 최초의 유인 우주비행을 성공시키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61년 소련의 유리 가가린이 보스토크 1호를 타고 최초의 유인 우주비행에 성공한다. 그가 남긴 `지구는 한 점의 푸른빛이었다'는 말은 전설로 남게된다. 미국은 다시 한 번 우주의 장벽을 넘기 위해 1인승 유인우주비행 프로젝트를 진행시킨다. 지구의 벽을 넘어서 우주로 나아가고자하는 노력이 경주되던 이 시기 치열했던 나사의 내부에는 인종차별과 여성차별이라는 또 다른 벽을 넘어서고자 하는 치열한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데오도르 멜피 감독의 영화 돻히든 피겨스돽는 이러한 장벽들을 뛰어넘고자 했던 흑인 여성 3명의 삶을 그린다.
수학 천재인 캐서린 코블, 흑인 여성 최초의 엔지니어를 꿈꾸는 메리 잭슨, 그리고 흑인 여성들의 리더인 전산원 도로시 본. 이 세 명의 흑인 여성들은 나사라는 당대 최고의 기술과학 연구소에서 자신의 능력에 걸맞은 일을 하지 못하고, 그에 걸맞은 대우를 받지 못하며 산다. 그들의 능력과 꿈은 높지만 인종차별과 남녀차별이 극심했던 당대의 미국은 그들의 능력과 꿈을 수용하지 못한다.
흑인이라는 이유로, 여성이라는 이유로 누구보다 뛰어난 과학자와 엔지니어의 능력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지하의 음습한 전산실에서 단순작업들을 반복할 뿐이다. 하지만 이러한 거대한 차별보다 더 절절하게 다가오는 것은 생활의 아주 작은 영역까지 파고든 미시적 차별이다. 예를 들어 이 영화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유색 여성 전용 화장실이라는 작은 설정은 작은 차별이 어떻게 지속적으로 확대되며 개인들을 위축시키고 제한하는 지를 잘 보여준다. 캐서린이 자신이 일하는 건물에는 존재하지 않는 유색여성 전용 화장실을 가기위해 그 바쁜 와중에 40분씩 시간을 보내고 그로 인해 상사의 질책을 받는 장면은 그들이 겪는 작은 차별의 처절함을 보여준다. 물론 이 영화 안에서는 이로 인해 `나사에서는 모두 같은 색의 오줌을 눈다'는 선언이 놀라울 정도의 카타르시스를 제공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렇게 누적되는 수많은 차별의 벽을 넘어서는 세 흑인 여성들의 용기와 현명함이 더욱 두드러지게 보이도록 만든다.
이 영화는 실존했던 3명의 흑인여성 과학자들의 삶에서 가장 극적인 순간들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불가능하게만 보였던 과학자, 엔지니어, 프로그래머가 되는 결정적인 순간들을 2시간이라는 러닝타임 안에 녹여내고 있기 때문에 당연하게도 이들이 겪어야만 했던 인종차별과 여성차별의 벽은 그렇게까지 절대적이고 처절한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또한 이들의 성공은 나사라는 거대 조직 내의 지위상승이기 때문에 이들의 탁월함을 인정하는 백인 남성 상사들의 역할이 결정적인 것으로 나타난다. 앞서 이야기한 나사라는 조식 내부의 위기의식 역시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들이 겪어야했던 차별의 벽은 상대적으로 작아 보이고 그들이 이루어냈던 지난한 싸움은 승리의 달콤함으로 쉬워 보이는 착시효과를 낳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차별에 맞서는 여성들의 노력과 용기는 큰 울림을 자아내고, 여전히 우리들에게도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차별의 벽이 아무리 높고 가혹하다 할지라도 때로는 그것을 넘기 위한 싸움이 아름답고 우아할 수 있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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